“호기심-독서가 날 키워…답보다 과정 충실해야 공부의 맛”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2월 4일 03시 01분



마스카와 도시히데 교수의 교토산업대 연구실은 책장 가득히 빼곡하게 자료가 들어차 있고 한쪽에 칠판이 걸려 있다. 요즘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유명인이 된 그는 교육제도를 비판하는 데도 열심이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호기심과 동경”이라고 강조한다. 교토=서영아 특파원
마스카와 도시히데 교수의 교토산업대 연구실은 책장 가득히 빼곡하게 자료가 들어차 있고 한쪽에 칠판이 걸려 있다. 요즘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유명인이 된 그는 교육제도를 비판하는 데도 열심이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호기심과 동경”이라고 강조한다. 교토=서영아 특파원
68세까지 외국 안나가 본 2008 노벨물리학상 日 마스카와 도시히데 교수

《지난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마스카와 도시히데(益川敏英) 교토(京都)대 명예교수는 일본 출신 수상자들 가운데서도 각별한 관심을 모았다. 영어를 못할뿐더러 68세가 되기까지 여권조차 만들어본 일이 없는 토종 물리학자라는 점이 우선 그랬다. 여기에 독특한 유머 감각까지 더해져 그가 내놓는 ‘신화’들이 더욱 화제를 뿌렸다. 그가 노벨상을 받은 논문은 37년 전인 1972년 고바야시 마코토(小林誠) 고에너지가속기연구기구 명예교수와 함께 쓴 ‘CP 대칭성의 파괴’. 그 뒤 20여 년간 전 세계에서 수백 명의 물리학자가 매달려 입증을 하게 되는 이 논문은 불과 한 달 만에 완성됐고 A4용지 6쪽짜리 분량에 불과했다거나 수년간 머릿속에서 뜸들이던 과제가 그가 목욕을 끝내고 나오는 순간 풀렸다는 등 화제가 만발했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현재의 교육제도에 대해 우려하는 발언도 계속했다. 한국 언론으로는 처음으로 2일 마스카와 교수의 교토산업대 연구실을 찾았다.》

―노벨상 수상식에서 밝힌 ‘과학소년’으로 성장한 어린시절 얘기가 인상 깊었다. 오늘날의 풍토에서도 그런 과학소년이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걱정이다. 내가 고교에 들어간 1955년 일본은 ‘멋대로 일으킨 전쟁’에서 패배한 탓에 무척 어려웠지만 ‘멍청할 정도로’ 분위기가 밝았다. 뭐든 열심히 하면 된다는 의욕에 넘쳤고 자원이 없는 일본이 생존하려면 과학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게 중론이었다. 지금은 부모의 재력이 곧 자녀의 학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됐고 대학생들의 의욕도 예전 같지 않다.”

―젊은이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호기심과 동경이고, 현재의 교육제도는 이 같은 호기심을 4지선다형 시험으로 망치고 있다고 했는데….

“과거 과학시험은 위에 1, 2줄의 문제가 있고 나머지는 여백이었다. 스스로 생각을 해야 했고 설사 답이 틀려도 사고과정은 맞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요즘은 객관적으로 학력을 측정한다는 허울 하에 시험을 자주 치르게 하고 복잡하게 출제한다. 그런데 실상은 채점을 편하게 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특히 학생은 시험과정에서 성장한다는 점을 잊고 있다. ‘물이 절반만 들어 있는 컵을 기울이면 어떻게 될까’라는 문제를 초중고교생에게 내면 초등학생이 가장 점수가 좋고 고등학생이 가장 나쁘다. 초등학생은 스스로 생각해보고 이를 표현하지만 고교생은 시험 요령에 따라 골치 아픈 문제는 풀지 않고 지나가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게 아니라 생각하지 않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교육오염’이다.”

―나고야(名古屋)대에 진학한 이유는….

“고교 2학년 때 그 대학 사카타 쇼이치(坂田昌一) 교수가 획기적인 입자모형을 발표했다는 신문보도를 읽고 나도 그 연구에 참가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됐다. 당시 부친은 설탕 도매상이었는데 내가 가업 잇기를 원했다. 사정 끝에 딱 한 번만 입시를 치르되 떨어지면 즉각 집안일을 돕기로 했다. 고교 3학년 때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내가 젊은이를 움직이는 힘이 ‘동경’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본에서 소립자이론만으로 6명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나왔다. 노벨상 수상의 가장 큰 비결은 뭐라고 보나.

“결국은 국력이고 사회 역량의 총합이라 해야 할 듯하다. 과학이 융성하려면 사회가 안정되고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이 있어야 한다. 연구기반이 마련돼 있으면 인재가 모여들고 그중에는 과제를 풀어내는 사람이 생겨난다. 천재란 게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마침 그 상황에서 그 문제를 해결할 가장 적합한 자리에 간 사람이 해결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축적이 필요하고 인재가 모여야 한다. 가령 소립자 실험 정도 되면 1000명 규모의 연구자가 달라붙어야 하고 이 중 노벨상을 받는 것은 기껏해야 3명이다. 한국도 우수한 학자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조만간 기대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한국에 대해서는….

“가본 적은 없지만 미안함과 감사함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까지 일본은 이웃 국가에 많은 누를 끼쳤다. 반면 패전의 구렁텅이에서 일본이 부활한 것도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나 그 특수를 누렸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장 가까운 나라 아닌가.”

―2005년 결성한 평화헌법을 지키기 위한 ‘9조 과학자 모임’에 발기인으로 참석했고 이번 수상식에서도 평화를 호소했다.

“5세 때 우리 집에 소이탄이 떨어졌지만 다행히 불발탄이었다. 하지만 이웃집들이 불바다가 되고, 부모가 손수레에 우리를 싣고 뛰어다니던 장면이 기억에 남아 있다. 이런 경험은 후손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 반전 평화사상은 1949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이면서 반핵운동을 펼친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 선생의 영향도 있다.”

―세계적 추세는 돈이 되는 응용과학에만 쏠리고 있다.

“도호쿠(東北) 만으로 흘러드는 강물 상류가 개발돼 그 일대 굴 양식을 망친 일이 있다. 이때 상류를 기초과학, 하류를 응용과학에 비유할 수 있다. 상류가 빈약해지면 하류가 말라붙는다. 기초과학은 실용화까지 100년도 걸릴 수 있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맥스웰이 전자파의 기초이론을 세운 것은 19세기 중반이지만 TV 등이 본격 보급된 것은 20세기 중반 이후다. 기초를 무시하면 그 영향은 수십년 뒤에 나타난다. 어렵더라도 기초과학에 힘을 쏟고 기초과학이 대접받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현재 노벨상 수상작도 모두 20∼30년 전의 연구성과 아닌가. 특히 대학은 당장 쓸모가 없어 보이는 학문도 수십 년 뒤를 기약하며 매달린다는 사명감이 필요하다.”

―독서를 많이 하는 걸로 안다.

“중고교 시절에는 동네 도서관의 책을 거의 섭렵했다. 요즘도 최소한 하루 1시간을 신문읽기에 쓴다. 모르던 정보를 접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다만 작은 기사를 즐겨 찾아 읽고 의견이 섞인 기사는 좋아하지 않는다. 판단은 스스로 해야 하니까. 젊은이들이 자신이 모르던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신문을 멀리한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거리(distance)의 기원을 밝혀보려 연구하고 있다. 이제는 후학 양성에 더 힘을 써야 한다고 본다.”

교토=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노벨상 소감 영어로 해야 한다면 안가겠다”던 마스카와 교수 영어관▼

영어논문 술술-문제점 콕 지적… 스피킹은 꿀먹은 벙어리

“나는 영어 못하지만 젊은이들은 꼭 영어로 말할 수 있어야”

마스카와 교수가 대학원 시절부터 애용해 왔다는 직필사인. 그리스어로 ‘필로소피아(철학)’란 단어 밑에 자신의 이름을 썼다. 물리학에서는 그리스어 철자가 자주 쓰인다.
마스카와 교수가 대학원 시절부터 애용해 왔다는 직필사인. 그리스어로 ‘필로소피아(철학)’란 단어 밑에 자신의 이름을 썼다. 물리학에서는 그리스어 철자가 자주 쓰인다.
“I'm sorry, I don't speak English.”

지난해 12월 8일 스웨덴 스톡홀름대에서 열린 노벨상 수상자 기념 강연장. 마스카와 교수가 수상기념 연설 첫머리를 이렇게 시작했다. 청중석에는 웃음이 번졌다. 이미 ‘영어 못하는 일본인 학자’ 얘기는 현지에서도 화제였다. 이어 그는 일본어로 연설을 했고 청중은 그의 뒤에 뜬 영어 자막을 열심히 읽어 내려갔다.

앞서 마스카와 교수는 노벨상 수상자로 결정된 뒤 영어 연설이 관례인 수상식에 영어를 해야 한다면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노벨상위원회는 그가 수상식에서 일본어로 연설하도록 배려해줬다.

그렇다고 그가 영어에 까막눈은 아니다. 영어 논문을 줄줄 읽고 문제점까지 지적해 낸다. ‘책상머리 영어’인 셈이다.

그는 수상식 이후 한 인터뷰에서 당시 파티장에서 느꼈던 점을 이렇게 전했다.

“세계적 학자들을 목전에 두고도 대화할 수 없으니 참 답답했다. 영어를 잘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다.”

그는 그러면서 “젊은이는 꼭 영어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국제화 시대에 영어를 못하면 스스로 고립되는 것과 같다는 것.

정작 본인은 이번 인터뷰에서 영어를 공부할 생각이냐는 질문에 “이 나이에 왜?”라는 반응을 보였다.

교토=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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