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제왕적 대통령’ 딜레마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월 13일 02시 55분



부시의 ‘8년 전시사령관’ 지위에 구제금융 권한까지

상원의원 시절 권력견제 앞장… 취임후의 변화 주목


미국 역대 전시(戰時) 대통령은 막강한 권한을 행사해 왔다.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른 프랭클린 루스벨트, 6·25전쟁을 치른 해리 트루먼, 베트남전쟁을 치른 린든 존슨 대통령 등이 대표적이다. 미국 정치학자와 역사가들은 이들의 재임기간을 ‘제왕적 대통령제(imperial presidency)’라고 부른다. 20일이면 권력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같은 평가가 따른다.

2001년 임기 시작과 함께 9·11테러 공격을 받은 부시 행정부는 테러와의 전쟁 비용으로 400억 달러의 예산을 승인받은 뒤 때론 삼권분립까지 무시하면서 권한을 행사했다는 것. 초사법적 인권유린기구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의 운영이 대표적인 경우다. 세계에서 가장 강한 의회 중 하나로 불리는 미국 상·하원도 8년 내내 전쟁을 벌인 ‘최고 사령관’ 부시 대통령 앞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자주 보여 왔다.

1979년부터 30년간 공화당 상원의원을 지냈던 존 워너 씨는 최근 뉴욕타임스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부시 대통령은 국익에 반한다며 주요 정보 공개를 거부했고 입법부 역시 삼권분립보다는 당의 이익을 우선시해 입법부 왜소화를 부추겼다”고 지적했다.


흥미로운 것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이 넘겨받는 행정 권력이 부시 대통령의 권한을 능가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

예일대 법대 잭 벌킨 교수는 “오바마 당선인은 전시 최고사령관 지위에 더해 최악의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천문학적 규모의 구제금융 및 경기부양 자금에 대한 집행 권한을 가졌다는 점에서 역대 최고 권력자”라고 평했다.

법률가이기도 한 오바마 당선인은 상원의원 시절 미국이 이란에 대해 군사행동을 취할 때는 의회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등 대통령 권력 견제에 관심을 기울여 왔지만 그 역시 막상 대권을 잡으면 태도가 달라질 것이란 이야기다.

실제로 상원의원 시절 트루먼 대통령의 전횡을 앞장 서 비판했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당선 직후 가장 열렬한 행정 권력 옹호자가 됐고, 오바마 당선인이 벤치마킹하고 있는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 역시 하원 재직 때와 달리 의회를 무시한 행정명령을 남발했다.

뉴스위크 최신호는 ‘딕(체니 부통령)이라면 어떻게 할까’라는 제목의 커버스토리에서 “오바마 당선인은 최근 수주 동안 매일같이 안보 브리핑을 받으면서 부시 행정부의 안보 정책과 대처 방식 중 장점은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됐다”며 “국가 안보를 제쳐 놓고 인권과 자유만 외칠 순 없다는 점을 깨달은 것 같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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