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 칼럼]13억의 굴기, ‘中華 평화론’을 경계한다

  • 입력 2008년 8월 19일 03시 01분


베이징 올림픽이 중반을 넘어섰다. 막판 메달 경쟁이 뜨겁지만 뇌리에 남아 있는 것은 역시 개막식의 충격이다. 13억 중국인의 굴기(崛出)를 과시한 그 거대한 제의(祭儀) 앞에서 느꼈던 두려움이다. 저 힘이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꿔 놓을지, 우리가 홀로 설 수나 있을는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들은 현란한 장면 장면마다 강한성당(强漢盛唐)의 추억과 열망을 되살리려고 했지만, 나는 한(漢)나라에 의해 멸망한 고조선이 떠오르고, 당(唐)에 패망한 고구려와 백제 생각이 났다. 역사란 정말 윤회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2003년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데이비드 강은 ‘아시아의 국제질서에서 위계질서와 안정’이란 매우 주목할 만한 논문을 발표했다. 아시아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야 할 이 논문의 요지는 이렇다. 아시아는 유럽과 달리 중국을 정점으로 한 위계질서 사회여서 예부터 중국이 약하면 혼란을 겪었고, 강하면 평화가 유지됐다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 중국이 지정학적 위치와 힘, 그리고 경제발전으로 인해 다시 아시아의 중심이 되고, 베트남 일본 한국 등 주변 국가들은 여기에 조응(照應)함으로써 아시아에 안정과 평화가 유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중심의 아시아 평화론’이라고 할 만한 그의 주장에 대해선 반론도 많지만 중국의 가공할 만한 흡인력을 보여주기엔 부족함이 없다.

大中華세기, 韓美동맹이 균형자

그가 말한 중국 중심의 평화시대가 온다면 우리는 거기에 안주할 것인가. 말이 좋아 ‘중화(中華) 평화론’이지 한국으로선 결국 사대(事大)로 돌아가자는 것일 텐데 그래도 좋은가. 베이징 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개막식이 다시 묻고 있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참 허망할 터이다. 일제(日帝)강점기의 아픔도 이겨내고, 전쟁과 분단의 고통도 견뎌가면서 이룬 우리의 성취가 한낱 중화의 품에 깃들기 위해서였다면 누군들 가슴을 안 치겠는가.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기엔 지난 세월 흘린 피와 땀이 너무 아깝다. 근대국가 60년, 이제 비로소 힘차게 날갯짓을 해보려는 참인데 하필 중화에 발이 묶인다는 말인가. 그것도 폐쇄적인 대륙 세력에.

작은 나라가 크고 강한 이웃에 맞서 살아남으려면 같은 처지의 약소국들과 힘을 합치거나, 다른 강대국들과 손을 잡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소국(小國)의 생존전략인 합종연횡(合從連衡)이고, 집단안보이며, 동맹이다. 우리라고 다른 길이 있을 리 없다.

누구의 손이든 잡아야 한다면 역시 미국이다.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어 영토적 야심을 갖기가 쉽지 않고, 자유와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공유하기에 미국과의 동맹은 우리가 대중화(大中華)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막아줄 수 있다. 한미동맹이 곧 버팀목이라는 얘기다. 지난 정권이 ‘동북아 균형자론’을 내놨을 때 고건 전 총리는 “한국이 균형자가 아니라 한미동맹이 균형자”라고 했는데 정확한 지적이다.

옛 소련의 위성국이었던 폴란드가 베이징 올림픽 개막일에 터진 그루지야와 러시아의 전쟁을 보면서도 미국과의 미사일방어(MD)기지 협상을 왜 전격 타결했을까. 불처럼 다시 일고 있는 러시아의 제국주의가 두려워서다. 알바니아와 크로아티아를 비롯한 많은 동유럽 국가가 “친미(親美)동맹이 살길”이라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기 위해 줄을 서는 이유도 다를 바 없다. 영토적 야심이 없고 애련(哀憐)과 구수(仇讐)의 과거사도 없는 대서양 너머 미국이 그래도 ‘균형자’로서 러시아를 견제하고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도움을 주리라는 믿음과 기대 때문이다. 동유럽 국가들이 이럴진대 우리야 더 말할 나위가 없을 터이다.

친미파도 親中의 중요성 잘 알아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선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면 “고루하고 정치적 상상력도 없는 사람” “기득권에 목매는 기회주의자”로 치부하는 경향이 생겼다. 병(病)이다. 미안한 얘기지만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일수록 중국과도 잘 지내야 한다는 것을 안다. 한미동맹이 중요한 만큼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이 오지 않도록 대중(對中) 관계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동시대의 한국인이라면 이걸 모를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반미(反美)가 선(善)이고 양심인 양 하는 위선과 치기(稚氣)에서 제발 벗어나자. 닷새 후면 베이징 올림픽의 성화도 꺼진다. 우리 모두 겸허한 마음으로 한국 외교의 앞날을 천착해 볼 때다.

이재호 논설실장 leej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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