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리타 공항, 앉아서 이용료 챙기다…일어나서 쇼핑 서비스

  • 입력 2008년 6월 25일 02시 58분


착륙료 21% 내리고도 편의시설 늘려 경영 질 개선

JR 3개사는 20년간 운임 한차례도 안올리고 흑자

도로공단 - 우정공사로 확대 ‘개혁 상징’ 자리잡아

“관료의 벽 없애니 비효율 - 무사안일 깨져”

‘공기업 민영화 모범’일본에서 배운다

《일본 도쿄(東京)의 관문인 나리타(成田)공항이 최근 발 빠른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공항을 운영하는 나리타국제공항회사는 2005년 10월 비행기 착륙료를 한꺼번에 21%나 인하함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비싼 공항’이라는 악명을 말끔히 씻어냈다. 이로 인해 공항회사 측 수입은 연간 65억 엔이나 줄었지만 전반적인 경영의 질은 개선됐다. 지난해 6월과 올해 4월 터미널 안에 잇달아 개장한 쇼핑시설이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항 내 쇼핑시설은 가격과 서비스, 상품 구색 등 대부분의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일본의 해외 쇼핑문화까지 바꿔 놓았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과거에는 해외여행지에서 물건을 사는 것이 일본인들의 관행이었으나 최근에는 나리타공항에서 쇼핑을 마친 뒤 여행지로 떠나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

공항회사 측이 경쟁 입찰 방식을 도입함으로써 각종 물품 조달이나 공사 비용을 15∼20% 낮춘 점도 착륙료 인하의 공백을 메우는 데 기여하고 있다.

가만히 앉아서 착륙료나 챙기던 나리타공항이 이처럼 비효율을 제거하고 서비스를 다양화하는 데 적극 나선 원인은 무엇일까.

공항 관계자와 외부 전문가들은 “2004년 4월 민영화 조치”라고 입을 모은다. 공기업 시절에는 경영진이 착륙료를 낮추려 해도 ‘관료의 벽’에 막혀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경영진은 경영진대로 담합과 무사안일에 젖어 있었다. 하지만 민영화를 계기로 ‘홀로서기’를 해야 할 처지가 되면서 타성을 빠른 속도로 벗어던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21세기의 민영화 모범생 일본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1980, 90년대 세계적인 추세였던 민영화는 1990년대 후반을 정점으로 정체 국면에 접어들었다. 200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민영화는 민영화 절정기였던 1998년에 비하면 5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2000년 이후 오히려 민영화가 가속화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03년 전원(電源)개발, 2004년 신도쿄국제공항공단, 2005년 일본도로공단, 2007년 일본우정(郵政)공사를 민영화했다.

민영화에 대해 일본 국민은 절대적인 지지를 보낸다. 우정민영화 관련법이 야당과 자민당 일부 의원의 반대로 부결된 것을 계기로 2005년 9월 실시된 중의원 해산총선거에서 일본 국민은 “개혁 계속”을 부르짖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에게 개헌선이 넘는 의석을 안겨 줬다.

자산규모 372조 엔에 직원만 25만여 명에 이르는 ‘공룡조직’의 골격과 체질을 민영화를 통해 완전히 바꾸는 것은 이익집단의 반발은 제쳐 놓더라도 기술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세계 주식시장 침체로 자산운용 환경도 좋지 않았다. 그런데도 일본우정그룹은 출범 후 처음으로 내놓은 반기(2007년 10월∼2008년 3월) 결산에서 당초 계획한 순이익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또 다른 성과도 있다. 일본우정그룹은 219개에 이르는 자회사를 통폐합해 15개로 줄이기로 했다. 이들 자회사 중 상당수는 우정공사로부터 부당한 특혜를 받는 대신 우정공사 퇴직자들에게 ‘낙하산’ 일자리를 제공하던 곳들이었다.

물론 이런 점만으로 우정공사 민영화가 성공했다고 판단하기에는 이르다는 반론도 있다.

이에 비해 1980년대에 이뤄진 전신전화공사, 전매공사, 국유철도 등의 민영화는 성공작이라는 게 압도적인 평가다. 특히 민영화 직전 매년 1조 엔이 넘는 적자를 내던 국유철도 민영화는 세계적인 성공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괴담’ 잠재운 JR 민영화

일본은 1987년 국유철도를 7개로 쪼갠 뒤 민영화했다.

여객운송은 전국을 6개 지역으로 나눠 JR홋카이도, JR히가시니혼, JR도카이, JR니시니혼, JR시코쿠, JR규슈 등에 경영을 맡겼다. 다만 화물운송은 JR화물이 전담하도록 했다.

국철 민영화의 효과는 민영화 직전인 1986년 국철의 경영성적표와 2006년 JR 7사의 실적을 비교해 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1956년 국유철도에 입사한 뒤 JR히가시니혼에서 부사장과 회장을 지낸 야마노우치 슈이치로(山之內秀一郞) 씨가 올해 2월 출간한 저서 ‘JR는 왜 변했나’에 따르면 국철은 1986년 한 해 동안 1조7001억 엔의 영업적자를 냈다. 이는 정부 보조금 1883억 원을 포함하지 않은 수치다. 반면 JR 7사는 2006년 9452억 엔의 영업흑자를 기록했다. 국철은 세금을 내기는커녕 정부에서 보조금 3776억 엔을 받아갔지만 JR 7사는 3750억 엔을 세금으로 냈다.

민영화 이전과 추진 과정에서 민간기업은 이윤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요금이 오를 것이라는 ‘괴담’이 적지 않았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나타났다. 국철은 민영화 직전 6년간 모두 5차례에 걸쳐 요금을 40%가량 인상했다.

하지만 JR히가시니혼, JR도카이, JR니시니혼 등 혼슈(本州) 3사는 소비세 신설과 세율 인상에 따른 자동 인상분을 제외하면 20여 년간 단 한 차례도 운임을 올리지 않았다. 3사 간의 경쟁 메커니즘이 작동한 결과였다.

민영화로 열차사고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빗나갔다. JR 7사의 사고 건수는 민영화 당시에 비하면 3분의 1 또는 4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국유철도 차장과 이야기를 하면 지도를 받는 느낌”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불친절했던 서비스도 몰라보게 좋아졌다는 평가다.

JR 각사가 주 수입원인 운임을 인상하지 않았는데도 경영실적과 서비스가 크게 개선된 원인은 무엇일까.

야마노우치 전 JR히가시니혼 회장은 그의 저서에서 △국영기업이라는 ‘무책임 체제’에서 벗어나 진지하게 기업 개혁을 추진한 점 △서비스를 개선해 수입이 늘어난 점 △기술 개발을 통해 생산성을 높인 점 등을 꼽았다.

그는 “이 세 가지는 파탄한 기업을 재건할 때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면서 “이를 20년간 꾸준히 실천했다는 것이 유일한 비결”이라고 덧붙였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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