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 신화’ 두바이 리더십의 힘

  • 입력 2008년 3월 29일 02시 59분


“신기루가 아닙니다” 바다 위의 인공섬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지도자 알막툼 총리의 아이디어로 건설된 인공섬 팜 주메이라의 모습. 인공 해안선을 따라 개인 주택이 줄지어 있고 뒤로는 공사 중인 아틀란티스호텔이 보인다. 두바이=로이터 연합뉴스
“신기루가 아닙니다” 바다 위의 인공섬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지도자 알막툼 총리의 아이디어로 건설된 인공섬 팜 주메이라의 모습. 인공 해안선을 따라 개인 주택이 줄지어 있고 뒤로는 공사 중인 아틀란티스호텔이 보인다. 두바이=로이터 연합뉴스
통찰력+추진력+상상력+경쟁력 ‘4力’ 다해 사막의 기적 일궜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야자나무를 본뜬 인공섬 ‘팜 주메이라’.

총길이가 10km를 넘는 초승달 모양의 섬에는 올해부터 손님을 받는 초호화 호텔 아틀란티스의 공사가 한창이다. 이곳의 한 현지 안내인은 “좌우로 갈라진 가지 부분에 줄지어 있는 개인 주택은 이미 분양과 입주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이곳은 두바이의 지도자 무하마드 빈 라시드 알막툼(59) 총리의 상상력과 추진력을 상징하는 곳이다. 그는 10년 전 “두바이가 관광지로 개발하기에는 해안선이 부족하니 이를 늘릴 방법을 찾아라”라고 지시했고 담당 공무원은 7km 둘레의 인공섬 개발안을 보고했다. 이에 대해 알막툼 총리는 “7km가 아니라 최소 70km는 돼야 하지 않겠느냐”며 계획 수정을 요구했다. 그의 배짱과 상상력이 돋보이는 대목. 두바이 관광의 핵심 코스인 ‘팜 아일랜드’ 프로젝트는 이렇게 시작됐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을 포함해 두바이 사례를 자주 언급하면서 알막툼 총리의 리더십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그의 리더십의 비밀이 무엇인지 현장 취재를 통해 알아봤다.

○ 미래를 준비하는 지도자

알막툼 총리는 2006년 지도자 자리에 올랐지만 아버지인 막툼 빈 라시드 알막툼 전 국왕이 두바이를 지배할 때부터 국정에 참여했다

라시드 국왕은 1985년 “너무 규모가 크다”는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제벨알리 항과 경제자유구역을 건설했다. 두바이는 중동 국가이긴 하지만 산유량은 그리 많지 않았고 유전의 대부분은 두바이보다는 아랍에미리트의 수도인 아부다비에 집중됐다. 석유 고갈 이후를 걱정하던 그는 두바이가 석유보다는 관광과 물류, 서비스업으로 먹고살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알막툼 총리는 영국 유학을 통해 어려서부터 후계자 수업을 착실히 받고 1995년 왕세자 자리에 올랐다. 이후 인공섬과 각종 경제자유구역, 초고층 빌딩 등 현재 두바이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물류 관광 시설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놨다.

‘사막의 기적’으로 불리는 두바이의 발전상은 이처럼 부자(父子) 지도자의 미래에 대한 준비와 위기의식에서 비롯됐다.

20여 년 전만 해도 두바이는 사막 한편에 있는 작은 어촌에 불과했다. 지도자는 “불가능을 제외하면 모든 게 가능하다”고 국민을 설득했고 지금은 결국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 알막툼 총리의 끊임없는 위기의식

두바이의 국영 항공사인 에미레이트 항공은 정부 지분이 100%지만 보조금은 한 푼도 받지 않으면서 약 20년 연속 흑자를 낼 정도로 경영 성과도 좋다. 처음엔 “사막밖에 없는 나라에 누가 비행기를 타고 오겠느냐”는 비아냥거림이 있었지만 지금은 이 항공사가 두바이 성공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덕분에 두바이는 아부다비를 꺾고 중동의 허브공항으로 자리를 굳혔다.

마이크 사이먼 홍보담당 부사장은 “1980년대에 두바이가 작은 어촌에 불과했던 것처럼 에미레이트 항공도 소형 비행기 두 대로 사업을 시작했다”며 “우리는 운영 수익을 쌓아 놓지 않고 끊임없이 시설과 인력에 재투자했다”고 말했다.

두바이를 교통의 요지로 만들어 많은 외국인을 오게 한다는 구상은 적중했다. 두바이 관광청에 따르면 2006년 한 해 외국인 관광객은 640만 명. 2015년에는 1500만 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압둘라 빈 수웨이단 관광청 부국장은 “알막툼 총리는 미래를 위해 두바이에 뭐가 필요한지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두바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버즈 두바이’를 비롯해 디즈니랜드의 8배에 이르는 두바이랜드, 수중(水中) 호텔, 세계에서 가장 큰 쇼핑몰 등을 짓고 있다. 물론 일부 관광 시설에서는 경영 적자도 발생한다. 하지만 두바이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두바이에 온 관광객들이 그곳에서만 돈을 쓰고 가겠느냐는 것이다.

관광업이 두바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3%까지 높아졌다. 반면 석유를 캐 번 돈은 GDP의 3%에 불과하다.

이렇게 두바이를 관광·물류 허브로 성장시킨 알막툼 총리는 최근 ‘금융 허브’라는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2004년 두바이의 중심 도로인 셰이크 자이드 로드 초입에 지어진 국제금융센터(DIFC)에는 500여 개의 국제 금융회사가 입주해 있다. 하지만 알막툼 총리는 요즘도 “우리가 꿈꾸던 것의 10%도 이루지 못했다”고 말한다.

○ 공공 부문 경쟁력 요구하는 지도자

알막툼 총리는 자국은 물론 중동지역에서도 인기가 높다. 지난해 이 지역의 한 언론사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그는 수많은 미국 영화배우들을 제치고 가장 ‘쿨(cool)한’ 유명인사로 꼽혔을 정도다.

그는 지도자인 동시에 감수성이 풍부한 시인이자 승마를 즐기는 스포츠맨이다. 평소에 직접 자가용을 운전하고 다니고 경호원 없이 홀로 두바이 시내를 다닐 만큼 소탈하다. 그는 경호 문제에 대해 “내가 혼자 마음 놓고 이 도시를 다니지 못하면 어떤 외국인이 이곳을 안전하다고 생각하겠느냐”고 말한다.

알막툼 총리는 공직사회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도 힘을 쓴다. 취재기자가 만난 두바이 공무원들은 모두 외국인이거나 미국 영국 등에서 공부한 유학파였다. 알막툼 총리는 “노력하지 않는 자는 언제든지 자리를 내놔야 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살라 알 콰이와니 두바이 투자청 국장은 “왕실에서는 고객을 가장해 정부 공공기관을 불시에 방문하는 팀을 따로 꾸려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바이 공항경제자유구역의 모하메드 알붐 홍보실장은 “입주 공공기관은 하루 24시간 업무를 본다”며 “비즈니스에는 밤낮이 따로 없는 만큼 우리도 그에 맞춰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두바이=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 빈부격차 극심… 치솟는 부동산 ‘거품’ 우려도 ▼

■ 두바이 경제성장의 그늘

한국과 두바이는 자원이 부족하고 대외 무역으로 먹고살아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알막툼 총리의 뛰어난 리더십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지만 그의 정책을 무조건 한국에 적용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 국내에서도 최근 두바이에 대한 지나친 환상이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

우선 두바이는 경제적으로는 이미 항공물류, 관광 등의 중심지로 떠올랐지만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세습군주제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두바이는 또 정부 정책이나 대기업의 횡포를 견제할 정당정치나 시민단체가 존재하지 않고 노조 설립도 금지돼 있다. 경제적 성공이 민주화 요구로 이어지면 두바이도 정치 불안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

전체 거주인구 중 80%를 차지하는 외국인 노동자와 자국민 간에 빈부 격차가 극심한 점도 문제. 엄청난 규모의 관광, 물류 시설에 대한 투자가 과연 그에 맞는 수요를 앞으로도 확보할 수 있을지, 치솟는 부동산 가격에 거품이 꺼질 가능성은 없을지 등에 대해서도 우려가 많다. 제조업 기반이 워낙 취약한 것도 아킬레스건이다.

또 한국은 일본과 중국, 홍콩 등 동아시아에 경쟁국들이 많지만 두바이는 중동에서 거의 유일한 경제 개방국이다. 카타르 등 다른 이웃나라들이 두바이 모델을 따라가기 시작하면 언제까지나 외국인 투자가 두바이에만 집중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걸프리서치센터의 에커르트 워츠 연구원은 “두바이는 교통 인프라나 전기 공급, 인플레이션 쪽에서 해결해야 할 분야가 많다”고 말했다.

조동성(경영학) 서울대 교수는 “두바이가 멋있는 건물을 지었다 해서 똑같은 건물을 짓는다고 ‘제2의 두바이’가 되지 않는다”며 “결과를 보고 감탄하고 흉내 내는 것보다 두바이가 만들어진 과정에서 지도자의 통찰력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두바이=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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