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노예의 시대’?

  • 입력 2008년 3월 2일 20시 29분


"100달러 내세요." "50달러로 합시다."

"그러지요…. 그런데 일만 시킬 겁니까? '파트너'(성행위 대상) 역할은 원치 않으세요?"

"둘 다 가능할 수도 있나요?"

"그럼요. 13세짜리가 있고, 12세, 11세도 구할 수 있어요. (미국으로) 입양하는 것처럼 꾸밀 서류도 다 만들어줄 수 있어요."

실제 상황이라고 믿기 어려운 대화. 그러나 올해 초 '흉악한 범죄-현대판 노예와의 직면'이란 책을 펴낸 벤저민 스키너 씨가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실제 체험한 상황이다. 인신매매 거래가 이뤄지는 거리에서 서성이고 있었더니 브로커가 "사람 구하세요?"라며 다가왔고 일사천리로 흥정이 이뤄지더라는 것.

최근 포린폴리시 기고문에서 스키너 씨는 당시 경험을 소개하면서 "1817년 이래 노예를 금지하는 수많은 국제협약과 법률이 만들어졌지만 현재 우리는 인류역사상 가장 많은 숫자의 사람이 노예로 일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개탄했다.

강제 노역이 전 세계에서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를 고발하는 보고서와 글들도 잇따라 발표되면서 21세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이 문제가 지구촌의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현대판 노예'는 노동 강도가 센 직업 종사자들이 흔히 "우린 노예나 마찬가지야"라고 말할 때와 같은 비유적 표현이 아니다. 종족간 내전의 와중에 총칼의 위협으로, 또는 세대를 거쳐 물려받은 빚 문서의 족쇄에 걸려 아무런 보수 없이 평생 중노동에 시달리는 강제노역자가 전 세계적으로 10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제노동기구(ILO)의 2005년 보고서에 따르면 강제 성매매의 족쇄에 갇힌 여성(139만 명 추정)을 포함해 1230만 명이 강제 노동을 하고 있다.

미 법무부와 국무부의 지난해 보고서들도 인신매매 증가추세를 우려하고 있다. 피해자는 아동과 여성이 대부분이다.

아이티에서는 사실상 노예 생활을 하는 아동이 3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브로커들은 농촌의 극빈층 가정의 부모에게서 "공짜로 학교도 보내주고 더 낫게 살게 해주겠다"며 아이들을 산다. 아이들은 보수도 받지 못한 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강제로 일한다.

강제노역이 가장 만연한 지역은 남아시아로 지목된다. 스키너 씨는 "남아시아에서 현재 1000만 명가량이 강제노역을 하고 있다"고 추산했고 ILO도 전체 강제노역자의 77%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몰려 있다고 추정했다.

인도 북부에는 마을 주민 전체가 '채무 노예'인 경우도 있었다. 부모나 할아버지가 빌린 적은 액수의 돈이 터무니없이 높은 이자로 인해 세월이 흐르면서 후손들을 채무 노예로 만든 것.

지난달 화정평화재단과 고려대 공동 주관으로 열린 아시아인권포럼에서 국제인권단체인 '엑팟인터내셔널'의 크릿사나 피몬생슈리아 사무관은 "동아시아에서 수많은 아이가 집안의 빚을 갚기 위해 노예처럼 일하거나 인신매매 후 성적 착취를 당한다"고 보고했다.

선진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계인 그레이스 정 베커 차관보가 지휘하는 미 법무무 민권국은 지난 1년간 168건의 인신매매 및 강제노동 조사를 벌여 111명을 기소했다.

ILO 보고서에 따르면 아시아·태평양 949만 명, 중남미 132만 명, 아프리카·중동 99만 명, 선진국에서 26만 명이 강제노역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최근에는 국제인권단체가 심각히 우려하는 인신매매 및 강제노역 피해 취약 대상으로 '탈북 여성 및 아동'이 지목되고 있다.

미국 하원은 지난해 말 중국 내 탈북자 인신매매 감시를 강화하고 피해자 보호를 촉구하는 내용을 포함한 국제인신매매 근절 법안을 통과시켰다. 미 국무부의 마크 라곤 인신매매 담당 대사도 지난달 자유아시아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중국 내 탈북자 인신매매 문제에 대한 미 행정부의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워싱턴=이기홍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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