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불황의 그늘, 서민들 ‘오들오들’

  • 입력 2008년 2월 26일 03시 01분


지난해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에서 시작된 미국 경제 불황의 그늘이 서민들의 생활 깊은 곳까지 스며들고 있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은 최근 정부가 대학 학자금 대출 예산 규모를 줄이면서 대학생과 학부모들이 고금리의 사설 대부업체를 찾아야 하는 신세가 됐다고 전했다. 또 주택담보대출을 제때 갚지 못해 파산 위기에 처한 일부 서민은 보험금을 노리고 살던 집에 불을 지르는 일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서민들 학자금 대출 비상=CNN방송은 최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학자금 대출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며 “중소형 대부업체들을 중심으로 대출조건을 강화하고 대출 금리와 수수료를 올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CNN은 정부 보증 학자금의 2008∼2009학년도 대출금리는 연 6%인 반면 대부업체의 금리는 최고 13%에 이른다고 전했다. 대부업체가 대출 전에 자체 신용도 평가를 통해 대출금리를 결정하지만 대출자의 3분의 2 이상은 13%의 최고 금리로 학자금을 빌리고 있다는 것이다.

고금리에다 까다로운 대출 기준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대부업체의 문을 두드리는 것은 정부가 지난해 관련법을 고쳐 대학 학자금 대출 예산을 줄였기 때문이다.

정부의 연간 학자금 대출 규모는 1인당 3500∼5500달러(약 330만∼520만 원) 수준이지만 등록금은 매년 크게 오르고 있다. 미국 입시전문기관 칼리지보드에 따르면 2006∼2007학년도 전체 학자금 대출 가운데 대부업체 대출이 차지하는 비율은 24%에 이른다고 한다.

학자금 대출을 원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대부업체들은 점점 더 많은 자본을 학자금 대출로 돌리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학자금 대출 시장의 40%를 차지하는 샐리 메이 등 주요 대부업체들이 대출 기준과 금리를 높이면서 동시에 대출 규모를 늘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CNN은 지난해 255억 달러(약 21조3750억 원)의 학자금을 대출했던 샐리 메이가 올해 350억 달러로 대출 규모를 늘리는 등 많은 수익이 예상되는 학자금 대출 시장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아직까지 많은 대학생이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정부에서 대출받은 학자금이 바닥나는 가을이 되면 상황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험금 타내려다 철창 신세 지기도=ABC방송은 “주택담보대출을 제때 갚지 못해 살던 집이 유질처분(foreclosure·대출을 제때 갚지 못할 경우 주택의 소유권을 은행 등이 가져가는 절차)될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 집에 불을 지르는 사건이 빈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뉴스위크는 최근 “지난해 미국 주택의 유질처분 비율이 2006년보다 70%나 높아졌다”고 전했다.

결국 대출자들은 보험회사로부터 보험금을 타내 담보대출의 덫에서 벗어나기 위해 집에 스스로 불을 질렀다가 ‘방화범’이라는 더 큰 수렁에 빠지게 된다는 것.

미시간 주의 한 여성은 유질처분 시한 3일을 남겨두고 자신의 집에 불을 질렀다가 20년 동안 감옥살이를 해야 하는 신세가 됐다고 ABC는 전했다. 콜로라도 주에서도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른 사람이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있다.

한 방화 조사관은 ABC와의 인터뷰에서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또 다른 절망스러운 행동을 하고 있다”고 탄식했다.

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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