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부양 그 정도론…” 美시장 냉담

  • 입력 2008년 1월 21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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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18일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1%에 해당하는 약 1450억 달러(약 137조 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경기부양책 발표는 시장의 불안심리를 잠재우는 데는 실패했다. 이날 뉴욕 증권시장에서 다우존스 산업지수는 전날 종가에 비해 59.91포인트(0.49%) 하락했다.

○ 미국인들, 조만간 ‘두툼한 봉투’ 받는다

부시 대통령은 경기부양책의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지는 않았다. 개인에 대한 소득세 환급과 기업에 대한 세금 감면이라고만 언급했다. 경기부양책이 확정되기 위해서는 민주당이 다수인 의회와의 협상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미국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백악관은 개인당 800달러, 가구 기준으로는 최대 1600달러까지 세금을 환급해주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올봄에 미국인 가정에는 최대 1600달러짜리 정부 발행 수표가 배달될 것으로 보인다.

○ 경기부양책에 이견 보이는 백악관과 민주당

미국 정치권은 일단 경기부양책 자체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세금환급 수혜 대상 등 구체적인 내용에 들어가면 백악관과 민주당이 견해차를 보이고 있어 앞으로 의회 절충 과정이 간단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부시 대통령은 경기부양책 발표에서 ‘소득세에 대한 세금 환급’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렇게 되면 소득이 적어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 저소득층은 아예 경기부양책 대상에서 제외된다. 은퇴자를 포함해 소득세를 내지 않는 가구는 전체의 37%인 5700만 가구에 이른다.

이 때문에 민주당은 중산층에 대한 세금 환급과 함께 저소득층은 물론 실직자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연소득 8만5000달러 이상 고소득층 계층은 아예 세금 환급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이들에게 돌아갈 예정인 세금 환급액을 현재 주택경기 침체와 고유가 등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계층인 저소득층으로 돌려야 한다는 것.

○ 경기부양책의 효과는?

미국 정부는 2001년 경기침체에 빠졌을 때에도 비슷한 내용의 경기부양책을 실시한 바 있다. 개인당 300달러, 가구 기준으로는 최고 600달러에 이르는 세금 환급을 해줬다. 당시 미국 전체 가구의 3분의 2가 세금 환급을 받았다.

당시 경기부양책 효과에 대해서는 경제학자 간에도 의견이 엇갈린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세금 환급에 따른 민간소비 증가분이 2001년 3분기에 0.8%, 같은 해 4분기에 0.6%에 달했다.

미국에서 민간소비는 전체 경제의 3분의 2를 차지할 만큼 핵심적인 요소다. 당시 세금 환급에 따른 민간소비 증가로 50만 개의 일자리가 생겼다는 통계도 있다.

이와 함께 당시 기업들에 대한 세제 혜택 부여로 일자리가 10만∼20만 개 창출됐으며, GDP 성장기여 효과가 0.1∼0.2%에 이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반면 세금 환급이 소비를 증가시키는 것은 분명하지만 경기부양 효과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19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2001년 당시 세금을 환급받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돈을 어떻게 쓸지를 물은 질문에 ‘소비를 하겠다’는 응답은 평균 22%에 그쳤다.

부시 대통령의 구상처럼 세금 환급 대상을 소득세를 납부하는 사람으로 제한하면 세금 환급액을 바로 소비할 가능성이 가장 큰 저소득층은 실질적인 혜택을 받기 어렵기 때문에 소비 증가 효과가 반감된다는 반론도 있다.

또 미국 경제위기의 근본 원인인 주택경기 침체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어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日 ‘재정 출동’ 남발하다 멍투성이▼

일본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금융위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여러 차례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내놓은 경험을 갖고 있다. 1998년에는 불과 1년 사이에 ‘사상 최대의 경기대책’을 2번이나 발표하기도 했다.

첫 번째 부양책이 나온 것은 그해 4월 24일. 미국으로부터 아시아 금융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대규모 감세안을 내놓으라는 요청을 받아 오던 일본 정부는 특별감세(減稅) 4조 엔과 공공투자 7조7000억 엔 등 16조6500억 엔에 이르는 대책을 발표했다.

이전까지 사상 최대 경기부양책으로 꼽혀 온 1994년 2월의 15조2500억 엔을 크게 웃도는 규모였다.

그러나 엄청난 재정을 동원했는데도 경기는 전혀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급기야 9월 25일에는 대형 은행인 일본장기신용은행이 사실상 파산을 선언하는 등 금융시장의 불안이 임계점을 넘었다.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내각의 뒤를 이어 7월 출범한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내각도 주저하지 않고 23조9000억 엔에 이르는 긴급경제대책(11월)을 발표했다.

이 중에는 일반 국민에게 상품권을 직접 나눠주기 위한 예산 6000여억 엔도 포함돼 있었다. 현금으로 쓰면 저축할 것을 걱정해 상품권을 나눠줬지만 상당수 국민은 이마저 현금으로 바꾸어 저축했다.

이에 따른 효과는 국내총생산(GDP)상의 국내 소비를 0.1% 끌어올리는 정도에 그쳤다.

반면 천문학적인 ‘재정 출동(경기부양책의 일본식 표현)’이 반복되는 동안 국가재정은 만신창이가 됐다.

1997년 말 388조 엔 규모였던 일본의 국채 및 차입금은 1998년 437조 엔, 1999년 489조 엔, 2000년 535조 엔, 2001년 607조 엔, 2002년 668조 엔, 2003년 703조 엔으로 급증했다. 빚을 갚기 위해 빚을 내야 하다 보니 원금까지 갈수록 불어났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는 경기부양대책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2003년 6월 여당에서 ‘재정 출동’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그는 “망국(亡國) 선언을 하자는 것인가”라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일본의 경우 감세보다 불필요한 공공사업에 더 많은 돈을 쏟아 부은 점이 부양책의 후유증을 증폭시켰다는 지적도 나온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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