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하원 ‘日, 위안부 사과 결의안’ 만장일치 통과

  • 입력 2007년 8월 1일 03시 00분


코멘트
“일본, 공식 사과하라”미국 하원이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킨 30일 워싱턴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위안부 출신 이용수 할머니가 결의안 통과를 환영하는 연설을 하며 주먹을 들어 보이고 있다. 워싱턴=신화 연합뉴스
“일본, 공식 사과하라”
미국 하원이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킨 30일 워싱턴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위안부 출신 이용수 할머니가 결의안 통과를 환영하는 연설을 하며 주먹을 들어 보이고 있다. 워싱턴=신화 연합뉴스
《미국 하원은 지난달 30일 오후(한국 시간 31일 오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해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하원 전체회의는 이날 일본계 3세인 마이크 혼다(민주당) 의원이 1월 31일 발의하고 하원의원 435명 중 168명이 공동발의자로 서명한 결의안 제121호에 대해 찬반토론을 벌인 결과 반대 의견이 없자 전원 합의로 표결 없이 통과시켰다. 일본의 최대 우방인 미 의회가 군위안부 강제 동원을 역사적 사실로 공식 인정하고 사과를 촉구한 것은 일본 정부의 책임 회피 행각에 제동을 걸고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데 주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하원이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규탄 결의안을 통과시킨 직후인 7월 30일 오후(미국 시간) 미 하원 캐넌빌딩 테라스.

이용수(79) 할머니는 쏟아지는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기쁨과 회한, 피로가 한꺼번에 뒤섞여 밀려오는 듯했다.

비슷한 시간대. 호주 킹즈우드 시에 사는 얀 뤼프 오헤르너 할머니도 결의안 통과 소식을 전하는 전화를 받은 뒤 깊은 상념에 잠겼다.

꽃다운 시절 겪어야 했던 끔찍한 기억을 세상에 공개하고 역사의 진실을 외면하는 세력에 맞서 힘겨운 싸움을 벌여 온 위안부 피해 생존 할머니들. 이들이 바로 30일 미 하원 결의안 통과의 주인공이었다.

특히 올해 2월 15일 하원 청문회에 참석한 이용수, 김군자(80), 오헤르너(84) 할머니의 생생한 증언은 미 의원들과 여론을 움직인 가장 큰 힘이 되었다.

▽오헤르너 할머니=네덜란드 출신 피해자인 오헤르너 할머니는 31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15년 전 내 비밀을 세상에 털어 놓은 뒤 가장 고대해 왔던 순간들 중 하나”라며 기뻐했다.

“이번 결의안 채택은 일본 정부에 상당한 압력을 가할 의미 있는 전진이에요. 그러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언행으로 볼 때 결의안 요구대로 일본 정부가 사과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는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 자바 섬에 살다가 19세 때인 1942년 일본군에 의해 강제수용소로 끌려가 위안부 수용소에서 군인들에게 유린당했다. 남편에게만 비밀을 고백한 뒤 평생 이를 가슴에 담아 오다 1992년 일본 정부를 상대로 투쟁에 나섰다. 영국 군인이었던 남편(11년 전 별세)과 두 딸을 둔 그는 “딸들과 통화를 했는데 매우 기뻐했다”며 “항상 나를 지지하고 격려해 준 남편이 살아 있었다면 오늘 함께 기뻐해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헤르너 할머니는 “호주 정부와 의회도 결의안을 채택하도록 다음 달에 캔버라에서 연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용수 할머니=“미 의회가 오늘 이렇게 한을 풀어 주는 계기를 만들어 줘서 고맙다.” 이 할머니는 지난달 30일 미 하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국제사회 양심의 승리”라고 말했다.

그동안 워싱턴 보스턴 등 미 전역을 돌며 진행한 강연회를 통해 진실을 알려 온 이 할머니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팔을 들어올리며 “일본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공식적으로 사과하라. 국제사회의 요구에 응답하라”고 힘주어 말했다.

“나의 인생은 고통으로 가득했지만 나는 평생을 진실과 정의만을 추구해 왔다. 이번 결의안 채택은 진실과 정의가 승리한다는 증거다.”

한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31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결의안 채택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명예회복과 정의실현을 향한 희망을 안겨 주었다”며 환영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6명의 위안부 할머니 중 이옥선(82) 할머니는 “결의안 소식도 듣지 못하고 먼저 돌아가신 할머니들을 대신해서라도 일본 정부로부터 사과를 꼭 받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미국 하원의 위안부 결의안 전문

일본 정부는 1930년대부터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위안부’로 알려진 젊은 여성들을 제국군에 대한 성적 서비스 목적으로 동원하는 것을 공식 위임했다. 일본 정부의 강제 군부대 매춘 제도인 위안부는 집단 강간, 강제 유산, 수치, 신체 절단, 사망, 자살을 초래한 성적 폭행 등 잔학성과 규모면에서 전례가 없는 20세기 최대 규모의 인신매매 가운데 하나다.

일본 학교들이 채택한 새 교과서들은 위안부 비극과 2차 대전 중 일어난 일본의 다른 전쟁 범죄를 축소하려 하고 있다.

일본의 공공 및 민간 관계자들은 최근 위안부의 고통에 대한 정부의 진지한 사과를 담은 1993년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의 위안부 담화를 희석하거나 철회하려는 의도를 나타내고 있다.

일본 정부는 1921년 여성과 아동의 인신매매금지협약에 서명하고, 2000년 무력 분쟁이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을 다룬 여성 평화 안보에 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1325호도 지지한 바 있다.

하원은 인간의 안전 및 인권, 민주적 가치, 법의 지배 및 안보리 결의 1325호에 대한 지지 등 일본의 노력을 치하한다.

미일 동맹은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에서 미국 안보 이익의 초석이며 지역 안정과 번영의 근본이다.

냉전 이후 전략적 환경 변화에도 불구하고 미일 동맹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정치 경제적 자유 및 인권과 민주적 제도에 대한 지지, 양 국민과 국제사회의 번영 확보를 포함한 공동의 핵심 이익과 가치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하원은 일본 정부와 민간의 노력으로 1995년 민간 아시아여성기금이 설립된 것을 치하한다. 아시아여성기금은 570만 달러를 모아 일본인들의 속죄를 위안부들에게 전달한 후 2007년 3월 31일 활동을 종료했다.

다음은 미 하원의 공통된 의견이다.

1. 일본 정부는 1930년대부터 2차 대전 종전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국가들과 태평양 제도를 식민지화하거나 전시에 점령하는 과정에서 일본 제국주의 군대가 강제로 젊은 여성들을 위안부로 알려진 성의 노예로 만든 사실을 확실하고 분명한 태도로 공식 인정하면서 사과하고 이에 대해 역사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2. 일본 총리가 공식성명을 통해 사과를 한다면 종전에 발표한 성명의 진실성이 반복해서 의심받는 사정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3. 일본 정부는 일본군이 위안부를 성의 노예로 삼고 인신매매를 한 사실이 결코 없었다는 어떠한 주장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공개적으로 반박해야 한다.

4. 일본 정부는 국제사회가 제시한 위안부 권고에 따라 현 세대와 미래 세대를 대상으로 이 끔찍한 범죄에 대해 교육해야 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