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英과 연합전선 ‘막후 영향력’ 활용

  • 입력 2007년 7월 25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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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주한 국방부 대책반국방부 관계자들이 24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7층에 마련된 ‘아프가니스탄 피랍 상황 대책반’에서 대응책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 제공 국방부
분주한 국방부 대책반
국방부 관계자들이 24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7층에 마련된 ‘아프가니스탄 피랍 상황 대책반’에서 대응책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 제공 국방부
한국인 23명을 억류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무장세력과 한국 정부 사이의 ‘심리전’이 치열하다.

무장세력은 변화무쌍한 조건을 제시하며 협상 시한을 24시간 단위로 연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무장세력 측이 제시한 요구조건은 ‘아프간 주둔 한국군 철수→한국인 인질과 동수(同數)의 탈레반 수감자 석방→한국 정부 직접 협상→탈레반 지역사령관을 포함한 수감자 전원 석방→한국인과의 통화 대가로 10만 달러 요구’ 등 시시각각으로 바뀌었다.

협상 시한도 ‘21일 오후 4시 반(한국 시간)→22일 오후 11시 반→23일 오후 11시 반→24일 오후 11시 반’ 등 몇 차례 연장됐으며 25일까지도 협상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주로 외신을 통해 알려지고 있는 이 같은 무장단체의 요구에 대해 일절 확인하지 않는 전략을 쓰고 있다. 의도적으로 혼란스러운 신호를 보내는 상대방의 심리전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장기전에 대비하는 한편 피랍자들을 신속히 구해낼 수 있는 효과적 수단을 찾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이상한’ 협상=이번 피랍 사태는 한국 정부와 탈레반 무장단체, 아프간 정부 등 ‘3자 간 협상’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무장단체는 외신을 통해 시시각각 협상조건을 흘리면서도 정작 한국 정부에는 정확한 요구사항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21일부터 무장단체와 지속적인 접촉을 유지하고 있지만 외신에 보도된 어떠한 요구도 공식적으로 내놓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 때문에 현재 이뤄지고 있는 무장단체와의 교섭은 협상으로 보기 어려우며 접촉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식적으로 확인해 주고 있진 않지만 정부는 외신을 통해 전해진 요구조건들이 실제로 한국인들을 납치한 무장단체가 아닌 ‘주변의 이해관계자’가 이번 사건을 이용하려는 분위기 속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접촉을 유지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요구조건이 명확하지 않다는 이번 사태의 특성을 고려할 때 이번 피랍 사태는 장기전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효과적 수단 찾았나?=정부는 24일 피랍 사태 6일째를 맞아 처음으로 “‘효과적인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고 밝혀 사태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찾았는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현지 대책본부의 활동도 활발하다. 아프간 정부를 포함한 관계 요로와의 협력 네트워크가 잘 작동되고 있다. 효과적인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효과적 수단이란 사태 악화를 막아내면서 해결의 가닥을 잡아가기 위해 한국 정부와 아프간 정부, 그리고 미국 영국 등 우방국의 도움 등이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탈레반 측이 요구하는 수감자 석방은 아프간 정부의 주권 문제지만 ‘막후’인 미국 영국 등 주둔 연합군의 의지에 좌우되는 사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탈레반의 요구대로 무장단체와 직접 협상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외부에는 철저히 비밀에 부치지만 아프간 정부의 도움을 받아 무장단체 측과 테이블에 마주 앉아 협상을 벌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 측과 접촉이 필요하다면 하겠다. 고위급 수준에서는 당장은 필요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 다만 실무차원의 논의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탈레반 측과의 인질-수감자 맞교환이 현실적인 대안일 수 있다고 보고 아프간 정부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미국 측에도 외교채널을 통해 인질 석방에 최선을 다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는 것으로 분석된다.

▽국내 언론 통제가 관건?=‘미디어 협상전’ 양상으로 진행되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정부는 국내 언론의 보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보도방향에 대한 주문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번 피랍자들은 순수하게 봉사활동을 위해 떠난 사람들이라는 것을 부각해 달라’ 등의 주문이다. ‘탈레반 무장단체의 요구사항에 대해 크게 쓰지 말아 달라’는 등의 요구도 한다.

정부는 피랍 사태의 상황 변화에 따라 진행하고 있는 브리핑을 ‘배경설명’, ‘심층 배경설명’ 등으로 나눠 진행하고 있다. 배경설명은 당국자의 언급을 인용할 수 있지만 심층 배경설명으로 설명한 내용은 ‘…인 것으로 알려졌다’는 식으로 보도한다.

하지만 일부 언론이 심층 배경설명 내용을 당국자의 인용으로 보도하는 일이 일어나자 정부 당국자는 23일 오후 브리핑에서 “더는 심층 배경설명을 하기가 곤란하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하태원 기자 triplets@donga.com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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