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월외교]佛·獨 ‘자존심 외교’ 美와 삐걱

  • 입력 2007년 7월 14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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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6월 6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현장을 찾았다. 미국이 프랑스를 나치 독일로부터 구해 낸 상징적인 군사작전의 60주년 기념행사에 부시 대통령이 참석한 그 무렵, 프랑스의 일간 르몽드에는 만평이 하나 실렸다.

그림 속에서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가 나란히 손을 잡고 노르망디 해변에 서 있다. 하지만 다정한 두 사람을 지켜보는 부시 대통령은 당황스러움과 곤혹스러움이 역력한 표정으로 그려졌다.

영국이 미국과 동맹의 격을 높이는 동안 프랑스와 독일은 미국에 굽히지 않은 ‘자존심 외교’를 폈다. 만평이 상징하는 것이 바로 오늘날 유럽의 외교지형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자존심 외교를 어떻게 평가할까. 영국과 미국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소 엇갈렸다.

○ “잃은 게 없다”

크리스토퍼 힐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두 나라가 특별한 국익의 손실을 봤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부시 행정부가 시라크, 슈뢰더 정부에 대해 화가 나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반발 기류가 국익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진 않았다는 것이다.

힐 교수는 그 이유로 과거와 달리 외교관계에서 안보와 무역 간 상관성이 엷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 시절 미국은 외교안보와 무역 정책을 서로 연계했지만 이제 무역문제는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아래에 놓여 있다. 성숙한 사회인 만큼 안보문제를 놓고 무역 분쟁으로 번지지 않게 할 정도의 분별력을 갖게 됐다.”

○ 워싱턴에선 격앙

조슈아 무라브치크 미국기업연구소(AEI) 연구원이 전한 워싱턴의 기류는 달랐다. 미 의회 구내식당에서 한때 프렌치 프라이(감자튀김)가 ‘리버티 프라이’로 바뀌고 미국에서 프랑스산 와인 수입이 크게 줄어든 것 이상의 손해를 프랑스가 봤다는 것이다.

무라브치크 연구원은 “독일과 프랑스가 실수한 것은 미국이 비록 (일방주의 정책 등)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미국이 싸우는 적이 독일과 프랑스에도 위협이 되는 ‘공동의 적’이라는 사실을 부정한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라크전쟁의 반대는 가능하다”면서도 “두 나라는 그런 차원을 넘어 마치 미국이 전쟁광이고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것이 이슬람 원리주의자가 아니라 미국인 것처럼 말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런 점을 워싱턴에서는 ‘미친 행동’으로 봤다”고까지 말했다.

○ 복구는 가능할까

‘프랑스 여권을 가진 네오콘(신보수주의자)’으로 통하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취임한 것은 미-프랑스 관계의 변곡점이 될 공산이 크다는 분석이 우세했다. 무라브치크 연구원은 “사르코지 대통령의 새로운 노력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단기적인 변화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점쳤다. 그는 “미국 소도시에서 그의 이름을 들어본 사람은 20%도 안 될 것”이라며 “대다수 미국인이 농담 삼아 ‘프랑스는 우리의 적’이라고 말하는 현상은 당분간 이어질 것 같다”고 내다봤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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