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법원이 ‘우향우’ 이끈다

  • 입력 2007년 7월 2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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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한 현실에 대한 분노, 힘겨운 법정 투쟁, 드라마틱한 승소 판결….

지금까지 미국 사회를 바꾸는 주요한 계기가 된 사건은 대부분 이런 절차를 밟아 왔다. 그리고 그 극적인 무대의 중심에는 연방대법원이 있었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간 판례를 통해 진보적인 목소리를 상당수 대변했던 대법원이 근래 들어 대법관 구성이 바뀌면서 ‘오른쪽(보수)으로 쏠린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달라진 판단=지난해 존 로버츠 대법원장의 취임 이후 지금까지 대법원이 처리한 사건은 모두 68건. 이 중 35% 이상인 24건은 모두 5 대 4로 판결이 갈렸다. 민감한 현안에 대해 보수, 진보의 의견이 4 대 4로 팽팽히 맞선 가운데 ‘캐스팅 보트’를 쥔 나머지 한 대법관의 선택이 운명을 갈랐다는 의미다.

가장 뜨거운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은 지난달 28일 ‘흑인 등을 배려해 학교 인종 비율을 제한하도록 한 것은 백인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판결. 이는 흑인들의 눈물겨운 투쟁으로 얻어낸 1954년의 판례(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사건)를 사실상 뒤집는 것이라는 비판과 함께 비난 여론이 쏟아졌다.

대법원은 임신 말기 산모를 대상으로 한 ‘부분 낙태(후기 낙태)’에 대해서도 2000년 판례를 뒤집고 이를 금지시켰다. 이러한 보수 성향은 자연스럽게 친기업적인 판결로 이어지고 있다. 필립모리스 등 담배회사를 상대로 낸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이나 개미 투자자들이 대기업을 상대로 낸 집단소송에서 회사 측의 손을 들어 준 것이 대표적 사례. 지난주에는 96년간 반독점법 위반으로 금지돼 온 제조업체-유통업체 간 ‘최저 가격 협정’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소수가 불러온 큰 차이=판결의 흐름을 바꿔 놓은 요인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새로 임명한 강경 보수파 로버츠 대법원장과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 특히 얼리토 대법관은 4 대 4로 의견이 갈린 상태에서 주로 진보 쪽에 손을 들어 온 전임자 샌드라 데이 오코너 대법관과는 정반대 위치에 서 있다. 오코너 대법관이 해 온 중간자 역할은 현재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이 맡고 있다. 하지만 케네디 대법관은 90% 이상 보수파에 의견을 보탰다.

진보 성향의 스티븐 브레이어 대법관은 “보수 성향의 대법관 몇 명이 너무 큰 변화를 가져왔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1일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도 법률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대법원 성향의 변화가 가져올 파장을 경고했다. 미국 대법관은 종신직이어서 이런 흐름은 바꾸기 힘들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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