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갈곳 없는 돈 해외로… 바닥 모를 엔低

  • 입력 2007년 6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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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엔화 가치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5일 도쿄(東京) 외환시장에서 유로화에 대한 일본 엔화 환율은 오후 4시 현재 164.52엔으로 유로화가 도입된 이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환율이 오르면 엔화 가치는 떨어진다.

미국 달러화에 대한 엔화 환율도 이날 121엔대로 다시 복귀했으나, 전날 4개월 만에 122엔대에 진입하는 약세를 나타냈다.

또한 일본은행은 5월 엔화의 실질실효환율(1973년 3월=100)이 94.9로 21년 8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4일 발표했다.

이는 주요 5개국(G5) 재무장관들이 뉴욕에 모여 ‘달러화 강세-엔화 약세’를 바로잡기로 결의한 1985년 9월 플라자합의 당시(94.8)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실질실효환율이란 미국 달러화, 유로화, 한국 원화 등 주요 15개국의 통화에 대한 엔화의 종합적인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다. 이 수치가 높으면 ‘엔화 강세’, 낮으면 ‘엔화 약세’를 뜻한다.

엔화 가치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1995년 4월 엔화의 실질실효환율은 165.5로, 당시 미국 달러화에 대한 엔화 환율은 79엔대였다.

○ 남아도는 돈 주체 못하는 가계가 원인

재무성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의 경상수지 흑자는 전년 대비 11.1% 늘어난 21조2531억 엔으로 4년 연속 최고치를 경신했다. 무역흑자 외에도 채권이자와 주식배당금 등으로 엄청난 외화가 쏟아져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엔화 가치가 역사적인 ‘저공비행’을 하는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개인의 움직임을 꼽고 있다.

일본의 가계는 지난해 말 현재 사상 최대 규모인 1540조 엔가량의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문제는 1년짜리 정기예금의 금리가 0.5%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라 남아도는 자금을 굴릴 데가 마땅치 않다는 점.

이 때문에 개인들은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해외에서 투자 돌파구를 찾고 있다.

이 중에는 투자신탁을 거쳐 우회적으로 해외로 나가는 자금도 많지만 최근에는 개인들이 직접 외화나 외화자산에 투자를 하는 현상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일부 전문가 사이에서는 도쿄외환시장의 거래금액 중 20∼30%는 개인자금이라는 추산까지 나온다.

개인들이 외화자산에 투자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엔화를 팔아치우기 때문에 엔화가치가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 앉아서 돈 버는 일본 기업들

기록적인 엔화 약세로 가장 신바람이 난 곳은 국제 가격경쟁력이 높아진 일본 기업들이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2006 회계연도(2006년 4월∼2007년 3월) 결산에서 처음으로 영업이익 2조 엔을 돌파한 도요타자동차의 경우 2조2386억 엔의 영업이익 중 2900억 엔은 엔화 약세 덕분에 번 돈으로 분석됐다.

엔화 환율이 1엔만 올라도 미국 달러화에 대해서는 350억 엔, 유로화에 대해서는 50억 엔가량 영업이익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고 도요타 측은 설명한다.

혼다와 마쓰다도 지난해 엔화 약세로 벌어들인 영업이익이 각각 1255억 엔과 400억 엔에 이른다.

반면 수입품을 비싼 값에 사야 하는 일반 소비자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특히 유럽에서 주로 수입하는 명품 와인 치즈 등은 소비자 가격이 줄줄이 오르는 추세다.

한국 등으로 출장을 자주 가는 회사원들 사이에서도 비명이 터져 나온다.

일본의 소비자들만 엔화 약세의 피해자는 아니다. 전자제품과 자동차 등 수많은 품목에 걸쳐 값싼 일제와 경쟁을 해야 하는 한국 기업에도 ‘악재 중의 악재’라고 할 수 있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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