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티스 美 컬럼비아대 교수에게 듣는 美-日관계

  • 입력 2007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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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럴드 커티스 컬럼비아대 교수가 24일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군사 대국화에 힘을 기울이는 일본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제럴드 커티스 컬럼비아대 교수가 24일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군사 대국화에 힘을 기울이는 일본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6일부터 이틀간 취임 후 첫 방미에 나선다. 짧은 일정이지만 미국 측도 캠프 데이비드에서의 정상회담과 백악관 만찬을 준비하며 ‘융숭한’ 대접을 할 태세다. 이 기간에 양국 정상은 굳건한 미일 동맹관계를 최대한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라크 정책 실패로 네오콘이 대거 실각하고 조지 W 부시 정권 내의 분위기가 크게 바뀌면서 양국 관계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 시절의 밀월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아베 총리의 방미를 계기로 미국에서 일본 정치 전문가로 손꼽히는 제럴드 커티스 컬럼비아대 교수를 만나 미일관계의 전망을 들었다. 뉴욕과 도쿄(東京)를 오가며 활동하는 커티스 교수는 “향후 미일관계가 겉으로는 동맹을 강조하겠지만 내부적으로는 대북 정책이나 일본의 지향점을 놓고 마찰이 빚어질 소지도 있다”고 진단했다. 인터뷰는 24일 도쿄 시내 호텔에서 이뤄졌다.》

▼양국 관계▼

개헌 통해 전후체제 벗겠다고 하는데

이데올로기적 접근은 침실서 꿈꾸고

냉엄한 국제현실 입각 국익 추구해야

― 아베 총리의 방미를 앞두고 일본에서는 미일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베 총리는 미국의 네오콘과 유사점이 적지 않다. 협상보다 압력을 선호하고 단독행동으로 치달으며 여차하면 레짐(Regime·체제)의 변화를 요구한다는 점이 그렇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이라크 정책 실패로 네오콘이 극적으로 퇴조하고 대북정책도 180도 전환했다. ‘네오콘적’인 아베 총리와 ‘탈 네오콘적’인 미국과의 엇갈림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 일본이 가려고 하는 길을 어떻게 보는가. 아베 정권은 임기 중 개헌 일정을 시작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는데….

“네오콘의 특징 중 하나가 이데올로기 중심이라는 점이다. 외국인 견지에서 개헌 문제에 이래라저래라 말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60년이나 묵었으니 바꿀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아베 정권이 지금 말하는 것은 ‘이러이러한 정책 때문에 이 부분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정책상의 필요에 따른 개정’이 아니고 ‘이데올로기적’인 개정이다. ‘현행 헌법은 전후 연합군총사령부(GHQ)의 압력으로 만든 것이니 우리 손으로 고치자’는 얘기다. 여기서 문제는 개헌을 통해 일본이 어디로 가려고 하는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 자민당은 ‘전후 레짐의 탈각(脫却·벗어버림)’을 올 7월 참의원 선거의 캐치프레이즈로 한다는 방침이다.

“아베 총리가 ‘전후 레짐의 탈각’을 내건 것이 외국에 널리 알려졌더라면 대단한 오해를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의 리더가 자기 나라의 체제를 바꾸겠다고 하는 것은 외부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레짐’이란 말의 무게를 너무 모른다는 인상이다. 전후 레짐으로부터 탈각한다면 그 대신 원하는 체제는 과연 무엇인가. ‘전후 자유민주주의 및 평화주의’로부터의 탈각은 아닌가. 일국의 총리라면 이데올로기는 침실에서 꿈꾸고 현실에 입각한 국익을 추구해야 한다.”

▼위안부 문제▼

미국인 시각선 ‘역사’ 아닌 ‘인권’ 문제

이상한 말 했다간 사태 걷잡을 수 없어

결의안 통과돼도 침묵 지키는 게 나아

― 일본 언론은 아베 총리 방미를 앞두고 가장 큰 ‘불씨’로 군위안부 문제를 꼽고 있다.

“이 문제는 미국인으로서는 역사문제가 아니고 ‘인권문제’이자 여성의 존엄에 관한 문제다. 아베 총리가 ‘협의의 강제성은 없었다’ ‘결의안이 통과돼도 사과는 하지 않겠다’는 말만 안 했어도 조용히 넘어갔을 텐데 그런 말을 해서 장작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돼 버렸다. 하지만 아베 총리도 이번에 자신의 ‘실패’를 잘 깨달은 듯하고, 최근의 잇단 ‘사죄’로 미국 내 분위기가 진정되는 양상이기도 하다. 총리가 미국에 가면 부시 대통령이 그 문제를 언급하는 일이야 없겠지만 미디어나 다른 정치인 앞에서는 조심해서 말해야 할 것이다. 혹 또다시 이상한 말이라도 하게 되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올 것이다.”

그는 아베 총리가 사죄를 거듭하지 않았거나 혹은 자민당 우파 의원들이 실제로 미국에 반대운동을 하러 갔더라면 결의안은 무조건 통과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미 하원은 결의안 의결을 아베 총리의 방미 이후로 미뤘다. 어떻게 될 것으로 보는가.

“결의안이 통과될지는 모르겠다. 통과된다면 일본 정부는 과잉 반응하지 말고 침묵을 지키는 게 낫다. 그래야 조용히 끝날 수 있다.”

― 언제나 그랬듯 일부 각료나 자민당에서 ‘튀는’ 발언이 나올 수 있다.

“그러면 다시 불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된다. 그런 각료가 있다면 재빨리 잘라야 한다. 사태가 진정된다 해도 여파는 남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번에 처음으로 일본의 과거사 인식에 의문을 품게 된 사람이 적지 않다. 아베 총리가 어떤 사람이고 뭘 하려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대일관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은 일본의 보수주의는 환영하지만 복고주의는 반대한다.”

― 일본이 전쟁 책임을 사죄하는 데 모호한 표현을 사용하는 사실이 이번에 널리 알려졌는데 미국인들은 어떻게 보는가.

“미국인들이 일본의 그런 면모를 본 것은 일부 전문가를 제외하면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 미국은 일본이 사죄하는 방식에 대해 지식도 관심도 없었다. 미국으로서는 사죄하라고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미국의 일본에 대한 신뢰는 꽤 굳건한 편이다. 한국은 일본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모호한 표현이 나오면 일본을 의심하지만 미국은 조금 다르다.”

― 한국이나 중국으로서는 이런 상황을 보면 복잡한 심경이 된다.

“얼마 전 일본을 방문한 중국의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군위안부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 ‘일본의 전후를 평가한다’며 화해 무드를 연출했다. 중국 외교의 만만치 않은 면모다. 냉정하고 실리주의적이다. 내가 보기에 한국도 이 문제를 더는 키우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 문제는 고노(河野) 담화로 어느 정도 결론이 났다. 고노 담화가 만들어진 배경에는 한일 간 모종의 합의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 이번에는 일본 정치권 일각에서 고노 담화 수정 움직임이 있어 문제였지만 그들도 고노 담화를 건드린다는 것이 얼마나 큰일인지를 이번에 잘 배웠을 것이다.”

▼납치 문제▼

美, 공식적으로 日측 해법 지지하지만

납치문제 집착 중유지원 참가 안 하면

북핵 해결 놓고 양국간 파란 일어날 것

― 부시 정권이 대북 유화정책으로 전환한 반면 아베 정권은 강경론을 고수한다. 지난해 고이즈미 총리가 부시 대통령에게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권했다가 거절당한 상황을 고려하면 양국의 처지가 정반대가 된 셈이다. 일본 내에서는 대북 문제에서 고립될 것이라는 우려마저 있다.

“미국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납치 문제의 일본 측 해법을 지지할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가 문제다. 만약 북한 핵 협상이 잘 진행돼 납치 문제의 진전 없이 미국이 테러지원국가 리스트에서 북한을 빼게 된다면 일본 우파는 ‘배신당했다’고 할 것이다. 반대로 일본이 납치 문제를 이유로 중유 지원에 참가하지 않는다면 나머지 5개국은 일본을 북핵 문제 해결 과정의 걸림돌로 여길 것이다. 나는 이 문제가 미일관계에서 파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큰 대목이라고 본다.”

― 아베 정권이 너무 납치 문제에 집착하기 때문인데 그건 이 정권의 태생적 한계 아닌가.

“납치 문제를 최우선시하는 지금의 독자노선은 미일관계에도 북-일관계에도 좋지 않다. 실제 납치 문제 해결에도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부시 정권도 정책을 크게 바꿨다. 아베 총리도 용기를 내서 방향을 선회해 우선 북핵 해결에 동참함으로써 장기적으로 납치 문제 해결을 모색하는 전략을 취하는 게 옳다.”

― 일본 정치를 연구해 온 전문가로서 일본이 가야 할 바람직한 길을 말한다면….

“일본은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견지하면서 이웃나라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군사 이외의 면에서 국제 공헌의 길을 찾아야 한다. 요즘 일본은 왜 그렇게 군사적 확대에만 관심을 기울이는지 이해할 수 없다. 실제로는 국방예산이 오히려 줄었고 군사대국화는 당분간 요원하다. 동남아에 가서 지도자들을 만나면 ‘중국에 비해 일본은 정치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을 많이 한다. 이들 나라는 중국과도 손을 잡지만 일종의 위험회피책(hedge)으로 일본에도 손을 내민다.”

그는 “영리한 중국이 아시아에 손을 뻗는 동안 일본은 ‘전후 레짐 탈각’ 타령을 하고 있다”는 꼬집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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