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총기난사 용의자는 한국인]“8년전 ‘콜럼바인 참사’의 대학 버전” 전율

  • 입력 2007년 4월 18일 03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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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공대 조기 게양 16일 충격적인 총기 난사 사건으로 비탄에 잠긴 버지니아공대는 희생자를 애도하며 조기를 내걸었다. 밤의 정적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충격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블랙스버그=연합뉴스
버지니아공대 조기 게양 16일 충격적인 총기 난사 사건으로 비탄에 잠긴 버지니아공대는 희생자를 애도하며 조기를 내걸었다. 밤의 정적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충격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블랙스버그=연합뉴스
32명의 무고한 목숨을 앗아간 총기 난사 사건의 용의자가 17일 한국 국적의 영주권자 학생으로 밝혀졌지만 미국 사회는 표면상 용의자가 어느 인종이냐에 대해선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 모습이다.

오히려 미국인들은 9·11테러 이후 다시 한 번 분노를 다스릴 능력이 없는 사람이 손쉽게 무기를 손에 넣고 교정에서 학살을 자행할 수 있는 ‘미국의 구멍 뚫린 시스템’을 실감하며 분노와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표정이다.

미국인들은 1999년 고교생 2명이 동료 학생 13명의 목숨을 앗아간 콜로라도 주 콜럼바인고교 총기 사건의 악몽을 떠올리며 ‘콜럼바인의 대학 버전’이라고 치를 떨었다.

CNN 등 미 언론은 이번 사건을 대학살(masscre)로 표현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충격적인 것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17일 ‘콜럼바인 사건 8년 후’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이번 사건은 미국인들이 맞닥뜨려야 하는 가장 큰 위험이 마음만 먹으면 너무도 쉽게 무장할 수 있는 국내 살인자들로부터 온다는 끔찍한 현실을 상기시켰다”고 논평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사건 발생 직후인 16일 애도 성명을 발표하고 17일 오후 2시에는 버지니아공대(버지니아텍)에서 열린 추모집회에 부인 로라 부시 여사와 함께 참석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교정을 폭력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다짐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미국 내 모든 관공서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의미로 조기를 게양하도록 지시했다.

미 의회 지도자들도 잇달아 추모성명을 발표했으며 이날 추모집회에 대거 참석했다.

이날 오후 버지니아공대에선 국가별 유학생회 대표와 학교 대표들이 대책 회의를 열고 대학 안전 문제를 논의했다.

버지니아공대 근처 아파트에 있는 이승우 한인학생회장 집에 모인 한인 학생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상당수 한인 학생은 계속 기숙사에 머물러 있어도 안전상 문제가 없을지를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고든 플레이크 맨스필드재단 사무총장은 “한국인이 용의자라는 뉴스에 충격을 금할 수 없지만 용의자의 출신국가나 인종이 미국인이 이 사건에 대해 느끼는 분노의 본질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 총기 난사 사건들에서도 범인의 인종이나 종교가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며 “미국 사회의 궁극적 관심은 총기 앞에 속수무책인 시민 안전, 대학을 비롯한 교육시설의 안전, 범인의 총기 입수 및 학교 내 반입 경위”라고 말했다.

버지니아공대 사건 현장에서 취재 중인 ABC방송의 한국계 기자인 레이철 김 씨도 “용의자가 한국인이라는 점 때문에 특별히 달라질 것은 없다”며 “만약 용의자가 불법 체류자였다면 굉장히 큰 반응이 있었겠지만 합법적인 신분이라고 해서 사실 안도했다”고 말했다.

미국인들은 이날 만나는 한국인들에게 한국 사회의 총기 문화에 대한 질문을 많이 했으며 미국 언론에서도 이런 주제가 많이 다뤄졌다. 하지만 방송에 출연한 전문가들은 한국은 총기 문화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안전한 사회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전했다.

취재 현장에서 만난 미국 기자들도 한국 기자들에게 한국의 교육이나 문화에 대한 질문을 많이 했다.

버지니아공대에 재학 중인 한인 2세인 새뮤얼 김(20) 씨는 “주변에서 한국인 학생들을 경원시하거나 위협하는 움직임은 아직 느끼지 못하고 있다”며 “그러나 아무래도 영향이 있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사건이 일어난 버지니아공대 콘퍼런스센터에 마련된 대책본부는 사건 소식을 듣고 달려온 학생 가족 및 친구들이 안부를 확인하느라 17일까지도 북적였다. 센터 앞에선 미국의 주요 방송사 등 50여 개 언론사들이 위성중계 시설을 설치하고 밤새도록 생방송으로 시시각각 현장 소식을 전하며 취재 경쟁을 벌였다.

블랙스버그=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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