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길 편안하게]<4>‘반면교사’ 대만

  • 입력 2007년 4월 10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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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타이베이 시 빈장관리처 장례식장. 타이베이 시는 화장을 권장하면서도 화장로 확대 등 인프라 확충 방안을 만들어 놓지 않아 폭발하는 화장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타이베이=성동기 기자
대만 타이베이 시 빈장관리처 장례식장. 타이베이 시는 화장을 권장하면서도 화장로 확대 등 인프라 확충 방안을 만들어 놓지 않아 폭발하는 화장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타이베이=성동기 기자
“요즘 타이베이(臺北) 시의 화장률은 80%를 넘어섰습니다. 법에 따라 매장을 해도 7년밖에 묘를 쓸 수 없고 비용이 워낙 비싸 화장을 택하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죠.”

대만 수도 타이베이 시의 유일한 화장장인 ‘타이베이 시 빈장(殯葬)관리처’의 류리팡(劉立方·여) 부처장의 설명이다.

타이베이 시 빈장관리처의 화장로 시설 규모는 모두 14기. 지난해 시신 1만8000구가 이곳에서 화장됐고, 내년에는 2만 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대만에는 사망 후 곧 화장하지 않고 평균 14일, 길게는 수개월 동안 냉동 보관했다가 길일(吉日)을 택해 나중에 화장하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 취재진이 방문한 지난달 30일에도 550여 구의 시신이 화장 날짜를 기다리며 타이베이 시 빈장관리처 내 냉동시설에 보관되고 있었다. 이 같은 풍습 때문에 화장장 운영은 날짜에 따라 편차가 심한 편이다. 적은 날은 하루에 30∼40구, 많은 날은 최대 124구까지 화장된다.

○화장장 수입을 인근 지역 주민에게 배분

현재는 시민일 경우 화장 비용으로 2000대만달러(약 5만7000원)를 치르지만 1970년대 초 화장장 설립 때부터 1999년 유료화 전환 이전까지는 시민들에게 화장비용을 한 푼도 받지 않았다. 인구밀도가 높은 섬지역이라 ‘이러다가는 죽은 자와 산 자가 땅 싸움을 하게 된다’는 위기의식에서 강력한 화장 장려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래를 염려했던 타이베이 시의 화장 장려정책은 인프라 확충이 동반되지 않아 새로운 사회 문제를 낳았다. 류 부처장은 “화장되는 시신은 해마다 늘고 있는데 시설은 더 늘릴 방법이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타이베이 시의 화장로는 증설 당시 주민들과의 협의에 따라 15기를 넘지 못하도록 제한돼 있다. 수요는 넘치지만 주민들의 반대와 시 의회의 견제로 그 이상의 증설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태다.

시설 확충은커녕 2004년부터는 타이베이 시 빈장관리처가 거둬들인 총 수입의 10%를 주민들에게 나눠 주는 것이 제도화됐다. 30여 년 전에 화장장이 먼저 들어섰고 나중에 주택가가 만들어졌는데도 주민들이 혐오시설 가동을 문제 삼기 때문이다. 지난해의 경우 1700만 대만달러(약 4억8000만 원)가 관리위원회를 통해 주민들을 위한 사업에 지출됐다.

서울시가 한계에 도달한 시립 벽제화장장의 부담을 덜기 위해 서초구 원지동에 제2화장장 건립을 추진 중인 것처럼 타이베이 시도 지난해 도심에서 떨어진 지역에 제2화장장 건립을 시도했다.

결과는 사업 백지화. 용지를 확정하고 건립 예산까지 넉넉히 확보했지만 용지 인근 산기슭 주민들이 “땅값이 떨어지고 위생상 좋지 않다”며 강력하게 반발했고 시의원 등 정치권이 개입하면서 결국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 류 부처장은 “제2화장장 건립이 현실적으로 어려워졌기 때문에 효율이 높은 설비로 교체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래를 대비했던 타오위안의 지혜

화장장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는 타이베이 시와는 달리 인구 190만 명의 타오위안(桃園) 현은 1980년대에 일찌감치 두 곳의 광역화장장 체제를 갖춰 화장장 부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했다. 남쪽의 6개 시군민은 중리(中∼) 화장장을, 북쪽의 7개 시군민은 타오위 안화장장을 각각 이용하고 있는데 그러고도 여유가 있어 타 지역에서도 많이 찾아오고 있다는 것.

쑤자밍(蘇家明) 타오위안 시장은 “현재는 주민들의 환경의식이 높아져 만약 지금 화장장을 새로 건립한다면 상당한 어려움에 부닥칠 것”이라며 “소음과 악취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 주민들의 혐오증을 최소화하고 화장장 주변 학교의 시설을 현대화하는 등 주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타이베이·타오위안(대만)=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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