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I‘역사 바로 세우기’

  • 입력 2007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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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연방수사국(FBI) 수사관이던 짐 잉그램 씨는 40년간 미제로 남아 있는 사망 사건을 최근 다시 현장 조사하기 시작했다. 왜 이제 와서 다시 문제를 들춰내느냐는 사건 지역 주민들의 질문에 그는 “이제라도 최종 결론을 내려야 하니까요”라고 대답한다.

미 정부가 풀리지 않은 채 묻혔던 1960년대 미제 사건(cold cases) 100여 건을 재수사하겠다고 최근 발표하면서 수사관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이를 위해 ‘남부 빈민 법률센터’는 지금까지 보관해 오던 74건의 미제 살인사건 기록을 FBI에 넘겼다.

4일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에 따르면 재수사 대상의 대부분은 흑인 인권운동이 활발했던 1960년대에 발생한 사건들이다. 백인우월주의 집단인 KKK가 한 것으로 짐작되는 흑인 테러와 시위 현장에서 경찰의 불법, 과잉 진압으로 인한 사망사건 등이 바로 그것. 1964년 임신한 여성이 마차에 끌려 다니다 살해당한 반인권적 사건도 들어 있다.

당시 이 사건들은 ‘강자의 논리’에 따라 수사가 흐지부지된 경우가 많았다. 백인의 보복을 두려워한 유족이나 주변 증인들이 아예 입을 다무는 바람에 수사 진척을 보지 못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최근 수사 관련법이 강화되고 ‘역사 바로 세우기’를 해야 한다는 여론에 따라 ‘시민권에 반하는 범죄에 대한 미제 사건법’이 제정되면서 재수사의 길이 열렸다. 이달 말 하버드대에서 관련 세미나가 열리는 등 학계의 관심도 높아진 상태.

일부 사건의 경우 당시 범죄 상황을 조사할 수 있는 상당히 구체적인 자료도 확보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에드거 후버 국장 시절 도청에 대한 비난여론 때문에 공개하지 못했던, 영장 없이 진행된 감청 자료가 활용될 예정이다.

그러나 재수사에 대한 냉담한 시각도 있다. 1960년대에 언니가 살해당한 룰라 윌러 씨는 “그동안 침묵하다 이제 다시 사건을 끄집어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고통스러운 기억을 되살리기만 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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