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경제가 재채기를 해도 더이상 독감 걱정은 없다”

  • 입력 2007년 3월 31일 03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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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중소 기계업체 트룸프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미국 경제가 둔화 조짐을 보이면서 대미(對美) 수출 물량이 절반 이상 줄었다. 미국은 트룸프에 독일 다음으로 큰 판매 시장.

그래도 니콜라 라이빙거 캄뮐러 사장의 얼굴은 어둡지 않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싱가포르 등지에서 주문량이 늘면서 총매출은 오히려 35% 늘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트룸프처럼 미국발 경기 후퇴의 악재를 잘 견뎌내는 유럽과 아시아 기업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소개했다. ‘미국이 재채기를 하면 세계가 독감에 걸린다’는 얘기가 이제 통하지 않는다.

○ 강력한 성장엔진 중국-인도가 뒷받침

올 1월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 포럼에서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린 단어 중 하나는 ‘디커플링(Decoupling·분리)’이었다.

각국 경제를 움직이는 정책 결정자와 기업 경영자들은 미국 경제와 세계 경제의 상호분리 즉, ‘탈(脫)동조화’ 현상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짐 오닐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이 주춤해도 세계 경제는 잘나간다. 사실은 잘나가는 것 이상”이라고 지적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였던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미국이 3년 연속 1% 이하 성장을 이어간다고 해도 세계는 잘 견뎌낼 것이다. 다른 곳에서 강력한 성장 엔진이 받쳐 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장 성능 좋은 성장 엔진은 역시 중국이다. 긴축정책 속에서도 올해 10%대의 고속 성장을 이어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인도도 9%대의 성장이 예상된다. 독일은 지난해 4·4분기(10∼12월)에 2000년 중반 이래 최대치인 3.6%의 성장률을 보였다. 일본도 느리지만 성장률이 높아지고 있다. 한때 바닥권을 헤매던 중남미와 러시아 경제까지 살아나는 기색이 역력하다.

반면 미국 경제 성적표는 초라하다. HSBC은행은 지난해 3.5%였던 미국 성장률이 올해 1.9%로 절반 가까이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주택시장 냉각으로 인한 소비 침체가 예상보다 심각할 경우 1% 미만의 성장까지 감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 경제가 미국 경제의 둔화 속에서도 탄탄한 성장세를 이어가는 가장 큰 이유는 각 경제권의 대미 수출 의존도가 눈에 띄게 줄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총수출에서 대미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9년 34%에서 지난해 25%로 내려갔다. 그 대신 대유럽 수출이 급증하면서 대미 수출과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왔다. 아시아 전체의 대미 수출은 지난 5년 동안 25%에서 20%로 떨어졌다.

유럽도 비슷해 지난해 유럽의 대미 수출은 1850억 유로로 5년 동안 제자리걸음을 했다. 반면 대아시아 수출은 2440억 달러로 5년 전에 비해 440억 달러 늘었다.

아시아와 유럽이 마냥 미국만을 바라보지 않는 것은 그만큼 내수시장이 탄탄해졌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IMF는 구매력 기준으로 2020년 중국이 미국 소비시장을 따라잡을 것으로 전망한다. 아시아 국가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평균 가계저축률은 8%에 불과하다. 유럽에서는 민간소비보다는 기업의 설비투자 위주로 내수가 살아나고 있다.

○ “脫美는 희망일 뿐… 최대 소비시장 무시 못해”

그러나 디커플링 회의론자들은 ‘세계 경제의 탈미(脫美)’는 단지 ’희망사항‘일 뿐이라고 반박한다. 아시아와 유럽 소비시장이 빠르게 팽창하지만 절대적인 소비 규모에서는 미국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중국과 인도 소비가 급증해도 아직 미국에 비해 각각 7분의 1, 12분의 1 수준이다.

게다가 최근 아시아와 유럽 기업이 자국보다 미국에 공장을 설립해 판매시장에 뛰어들고 있기 때문에 미국 경제가 둔화되면 수출 실적에 관계없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스티븐 로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이 IMF 전망치인 4.9%보다 훨씬 낮을 것으로 전망하며 “미국 경기 후퇴에 중국 긴축정책까지 겹치면서 세계 경제에 적신호에 켜졌다”고 경고했다.

최근 디커플링 현상을 심층 분석한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세계 경제가 미국 의존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할 수는 없지만 대미 의존도가 줄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진단했다.

특히 중국, 인도, 일본, 독일처럼 경제 규모가 큰 국가들이 대만, 홍콩, 싱가포르나 유럽의 경제 중소국들보다 미국 경기 둔화의 타격을 덜 받는다고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또 내수를 뒷받침할 ‘재정 실탄’을 많이 확보한 국가일수록 미국발 경기 후퇴의 악재를 이겨낼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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