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부활’정책 日공립고 살렸다

  • 입력 2007년 3월 9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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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설명회 북적일본 공립학교들이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2005년 11월 도쿄 시내에서 열린 공립 구단중등교육학교의 입학설명회. 참석자가 많아 한 번에 400명씩 하루 3차례 설명회가 열렸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입학설명회 북적
일본 공립학교들이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2005년 11월 도쿄 시내에서 열린 공립 구단중등교육학교의 입학설명회. 참석자가 많아 한 번에 400명씩 하루 3차례 설명회가 열렸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평준화 조치로 약 40년간 몰락의 외길을 걸어온 일본의 공립고가 부활의 기지개를 활짝 켜고 있다.

도쿄(東京)도가 2005년 이후 잇따라 설립한 고이시카와(小石川) 하쿠오(白鷗) 료고쿠(兩國) 오슈칸(櫻修館) 등 4개 중고일관교(중학교와 고교의 6년 과정을 하나로 통합한 학교)의 올봄 입시에서는 600명 모집에 5043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3 대 1가량인 사립고의 평균경쟁률을 크게 웃도는 8.4 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인 것. 경쟁률뿐 아니라 지원 학생들의 학력수준에서도 입시 전문가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아사히신문이 발행하는 주간지인 아에라 최근호에 따르면 대형 입시학원인 요쓰야오쓰카 의 이와사키 다카요시(巖崎隆義) 중학정보부과장은 “가이세이(開成)나 오인(櫻蔭) 등에도 합격할 수 있는 점수를 받은 학생이 구립 구단(九段)이나 도립 고이시카와에서 떨어진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또 고이시카와의 엔도 유지(遠藤隆二) 교장도 “아자부(麻布)나 무사시(武藏)에 합격한 학생이 우리 학교에서 떨어진 사례도 있었다”고 밝혔다.

가이세이, 오인, 아자부, 무사시는 일본의 학부모라면 누구나 아는 명문사립학교들. 우수생들의 기피 대상이던 공립고가 이런 명문 사립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은 불과 2, 3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다.

○ 명문 도립고 줄줄이 추락

공립고가 처음부터 학부모와 학생들의 외면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1960년대에는 도쿄도립고가 명문고였다.

히비야(日比谷)고는 1950년 이후 18년 연속 도쿄대 합격자 수 전국 1위 자리를 지켰다. 니시(西)와 도야마(戶山)고는 2위 자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했고 고이시카와, 료고쿠고도 상위 10위권 밖으로 벗어나 본 적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1967년 도쿄도가 사실상의 평준화 조치인 학교군(群)제를 도입하면서 도립고의 추락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명분은 서열화의 부작용을 바로잡는다는 것이었지만 실제는 ‘히비야고 때리기’라는 게 세간의 평가였다. ‘악(惡)평등’이라는 말도 나왔다.

히비야고의 부침을 보면 이는 여실히 나타난다. 학교군제가 도입된 이듬해 히비야고는 도쿄대 합격자 수 전국 1위 자리를 사립인 나다(灘)고에 내줬다. 1980년에는 합격자 수가 한 자릿수로 내려앉았고 1993년에는 단 1명만 합격했다.

다른 명문 도립고도 줄줄이 추락했다.

1991년 고이시카와고에 대한 지원자는 모집정원을 밑돌았다. 1992년에는 하쿠오고가, 1994년에는 도야마고와 히비야고(여학생만)가 정원 미달 대열에 합류했다.

명문고들의 부진은 도립고 전체의 붕괴 위기로 이어졌다.

1992년 도립고의 평균경쟁률은 1965년 이후 최저인 1.16 대 1로 떨어졌다. 지원만 해 놓고 시험장에 나오지 않은 학생도 27.9%에 이르렀고 입학 후 중퇴자도 줄을 이었다.

1994년 조사 결과 도쿄도의 고교 진학 희망자 가운데 도립고 진학을 희망한 학생의 비율은 사상 최저인 68.6%까지 하락했다.

○ 평준화 입시제도 전격 U턴

도립고의 붕괴를 더는 방치할 수 없다고 본 교육 당국은 1994년부터 학생의 학교선택권을 확대하고 학교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입시 제도를 ‘U턴’시켰다.

학교별 단독선발제를 실시하고 학구(學區)의 경계 밖에 있는 학교에도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5개로 획일화돼 있던 시험과목도 각 학교가 3∼5개 범위 안에서 자율적으로 선택하도록 허용했다.

이 같은 개혁은 1990년대 후반 이후 도립고 지원율을 73%대에서 안정화시키는 등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우수 학생의 사립고 쏠림현상을 시정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001년 도쿄대 입시에서 합격자 수 전국 50위 안에 든 도립고가 단 하나도 없는 실정이었다.

이에 대한 타개책으로 도쿄도가 내놓은 조치가 ‘진학지도중점교’ 지정이다. 도쿄에서 35년 만에 ‘진학’이라는 단어가 공교육의 목표 중 하나로 내걸린 것.

도쿄도는 2001년 9월 히비야 도야마 니시 하치오지히가시(八王子東)고를 진학지도중점교로 지정한 데 이어 이듬해에는 아오야마(靑山) 다치카와(立川) 구니타치(國立)고를 추가 지정했다.

○ 중고일관교 대학입시 두각

2005년부터 시작된 중고일관교 설립도 진학지도중점교와 마찬가지로 입시명문고 살리기의 성격이 강하다.

우선 중고일관교로 바뀐 고이시카와 하쿠오 료고쿠 등은 모두 과거의 입시 명문고들이다.

더구나 6학년제인 중고일관교가 가장 강점을 발휘하는 분야가 대학입시다. 5년간 정상적인 교과과정을 마친 뒤 남은 1년간은 입시에만 전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명문대 합격자 수 상위권을 휩쓰는 사립학교들이 대부분 중고일관교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학생모집에서 파란을 일으킨 도립 중고일관교가 최종적으로도 성공할지 여부는 졸업생이 나올 때까지 좀 더 지켜봐야 하지만 진학지도중점교는 일단 합격점을 받았다.

진학지도중점교 지정 이후 입학생이 첫 입시를 치른 2005년 히비야 등 4개 고교는 도쿄대 도쿄공업대 히토쓰바시(一橋)대 교토(京都)대 등 4개 국공립 명문대에 130명을 합격시켰다. 이는 2000∼2005년의 평균 합격인원보다 22명이 많은 수치다.

또 와세다(早稻田)대 게이오(慶應)대 조치(上智)대 등 3대 사립 명문대 합격자도 618명에서 727명으로 늘었다.

이런 성과는 4개 고교의 인기를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전체 공립고에 대한 기피현상을 없애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방과 전후 맞춤형 보충수업…매년 두자릿수 도쿄대 합격▼

2001년 도쿄도가 4개 고교를 진학지도중점교로 지정했을 때 가장 눈길을 끌었던 학교는 하치오지히가시고였다.

히비야 도야마 니시 등 3개 고교는 1960년대에 이름을 날린 오랜 입시명문고인 데 비해 하치오지히가시고는 1975년에 개교한 신흥 도립고이기 때문.

도쿄 외곽인 다마(多摩)지역에 있는 이 학교는 전체 도립고가 위기에 놓여 있던 1990년대에도 매년 두 자릿수의 도쿄대 합격자를 냈다.

그 비결은 개교 이후 지속적으로 실시해 온 자유참가 보충수업.

3학년생은 방과 후 주 3회 정도, 1학년과 2학년생은 이른 아침 시간을 중심으로 주 1, 2회가 원칙이었지만 학생들이 희망하면 강의 횟수는 더 늘어났다.

특히 입시철이 가까워지면 3학년은 거의 매일 보충수업에 참가했다. 이 때문에 입시학원에 다니는 학생의 비율이 다른 학교보다 훨씬 적었다.

일부 과목의 보충수업은 참가인원이 200명을 넘어 인근 대학의 강의실을 빌려 수업을 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고 요미우리신문은 전했다.

하치오지히가시고의 성공스토리는 ‘도립고는 죽지 않는다-하치오지히가시고 약진의 비밀’이라는 책으로 출판되기도 했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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