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마이클 오핸런]럼즈펠드, 오만에 가린 업적

  • 입력 2007년 3월 2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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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전쟁 악화, 전쟁전략 신뢰 상실, 잘 봐줘야 부분적 성공에 그친 아프가니스탄전쟁…. 지난해 말 퇴임한 도널드 럼즈펠드 전 미국 국방장관의 유산(遺産)은 결코 밝지 않다.

그래서 요즘 럼즈펠드 전 장관을 보면 베트남전쟁을 수행한 로버트 맥나마라 전 국방장관을 떠올리게 된다. 책임졌던 전쟁의 성격과 비슷한 재임기간,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경력, 심지어 헤어스타일까지 둘은 유사점이 많다.

이라크 전쟁터에서의 실패를 넘어서진 못하겠지만 럼즈펠드의 성적표는 후대의 군사 분석가에게 많은 일거리를 남겼다. 럼즈펠드가 실패자라는 존 매케인(공화) 상원의원의 지난주 비판에 대체로 동의하지만 그에겐 업적도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럼즈펠드는 군사전환(transformation)이라는 단어가 뜻하는 긍정적인 파급 효과를 제대로 짚은 인물이다. 그는 국방부 내의 개혁 절차를 가속화했다. 전쟁 계획뿐 아니라 국방과학, 군 편성, 전 세계 미군 재배치, 동맹관계, 미래의 도전을 예측하고 무력 충돌 시나리오를 짜는 유연한 개념 작업까지 주도했다.

럼즈펠드가 주도한 군 변화를 추려 보면 다음과 같은 사례들을 꼽을 수 있다. 미 육군의 신속배치를 위한 스트라이커(Stryker) 부대 창설, 미래형 전투 시스템 주창, 육군 전투여단에 ‘모듈’ 개념 배치, 국방부의 국방과학기술 진일보, 일부 미사일방어체제 진전, 위성 인도 폭탄의 개발, 무인 전투비행대 편성, 해외 미군기지 재배치, 해군의 해외 전함배치 변화, 항공모함의 상시 해외 배치 원칙 폐기….

이런 정도의 업적이라면 럼즈펠드는 꽤 괜찮은 이력서를 챙겼을 법하다. 이라크전쟁을 논외로 한다면 (그런 가정이 가능하기만 하다면) 럼즈펠드는 역대 최상위권 국방장관으로 평가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럼즈펠드나 미국 모두에 그럴 가능성은 없다. 최하위 국방장관의 평가를 모면하면 다행이다.

럼즈펠드 식의 군사 전환은 야심만만한 개념이다. 그러나 긍정적인 어감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이 1990년대 민주당 정부를 관통해 주창된 군사혁명(revolution in the military affairs)보다 뛰어나다고 말하긴 어렵다. 엄밀히 말하면 그는 ‘체제 전환’의 주역이 아니라 과거의 제안을 실현 가능하게 이어받은 장관으로 평가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군기지 폐쇄 결정 및 항공모함의 해외 배치 방법을 개선한 것은 인상적이다. 럼즈펠드가 외교협상을 통해 이런 변화를 서유럽과 한국에서 실행한 능력은 부러움을 살 만하다. 한국과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협상은 ‘작전지휘권은 간명할수록 좋다’는 원칙에 어긋나지만 그럼에도 미 2사단의 후방 배치와 용산기지의 평택 이전 결정은 새로운 안보 환경에 부합한다. 그는 주한미군의 3분의 1을 감축했고, 아시아 내 미군 배치도를 새로 그렸으며, 아프간전쟁을 위해 중앙아시아 미군기지도 건축했고, 독일 주둔 미군도 줄였다.

군사전환에서 거둔 그의 성과는 대체로 긍정적이지만 이것들은 안타깝게도 오히려 그의 재임기간 중 생긴 비극들을 떠올리게 한다. 과거의 믿음을 불신하고 변화를 이끌려는 그의 특징이 많은 성취를 불러왔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는 점에서 그는 셰익스피어(비극의 주인공)를 떠올리게 한다.

럼즈펠드는 통념 뛰어넘기를 통해 많은 국방조직과 문화를 바꿔 놓았다. 그러나 그의 오만과 군 일부 인사를 향한 경멸은 이라크의 수렁을 불러왔다.

마이클 오핸런 미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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