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의 ‘내스카(NASCAR·내부개조 자동차대회) 습격’

  • 입력 2007년 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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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실적에선 추락을 거듭하는 미국의 자동차회사 ‘빅 3’가 예외 없이 상위권을 휩쓰는 대회가 있다. 승용차 내부를 개조한 자동차 대회(NASCAR·내스카)가 바로 그것. 비결은? 외국차 출전을 막아놓은 ‘진입 장벽’ 덕분이다.

올해 내스카 시즌 개막을 알리는 ‘데이토나 500’ 대회가 열린 18일(현지 시간)은 이런 점에서 50년 금기(禁忌)가 깨진 날이었다. 미국에서 1년간 100만 대가 팔리는 베스트셀러인 일본 도요타 캠리가 첫 출전했기 때문이다.

‘미국 차만 출전할 수 있다’는 조항이 올해부터 ‘미국에서 제조한 차’로까지 확대 적용되도록 한 도요타의 로비 결과였다.

단골 출전차인 포드의 퓨전은 멕시코에서, GM 시보레의 몬테카를로는 캐나다에서 조립된다. 도요타는 “미국 내 10개 공장을 둔 캠리가 미국차에 더 가깝다”고 버텼다. 하긴 크라이슬러의 다지는 소유주가 독일 다임러벤츠 그룹이다.

그런 만큼 개막전을 지켜보는 미국인의 심기는 착잡할 수밖에 없었다. 포드의 퓨전을 주축으로 한 경주팀을 소유한 잭 러시 씨는 최근 MSNBC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인이 일제 차를 왜 사느냐”며 상처받은 자동차 종주국의 심정을 토로했다. 지난해 시장 점유율 14.6%로 포드를 제친 도요타가 올해 안으로 GM을 제치고 미국 내 판매 1위 회사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내스카는 농구를 앞질러 미식축구, 야구에 이어 TV 시청률 3위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치솟는 종목이다. 한번 경기가 열리면 18만 명가량이 경기장을 찾으며 광고주 단체가 파악한 ‘내스카 팬’만 7500만 명에 이른다.

도요타의 내스카 진출은 단순한 인기 대회에 진출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일제 차가 ‘고졸 학력, 백인, 남부 및 중서부 거주, 맥주 즐기기’로 일반화되는 평균 미국인인 내스카 애호가들의 마음을 파고들 기회가 주어졌다는 뜻이다.

잔 고장이 없고 정숙한 일제 차는 동·서부 해안의 고학력 고객에게는 어필했지만 ‘미제 차 구입=애국’이라는 등식을 신봉해 온 중서부 및 남부인에게는 관심 밖의 대상이었다.

도요타 USA의 짐 프레스 사장은 “우리의 목표는 (텍사스 주 등 남부에서 많이 팔리는) 픽업트럭이다. 팔릴 만큼 팔린 캠리 판매엔 큰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도요타는 수입차와 골프 같은 고급 이미지보다 낚시와 내스카(처럼 투박하고 남성적 이미지)에 친숙한 회사로 만들겠다”고 했다.

대당 가격이 3만∼5만 달러에 이르는 픽업트럭은 미국 정부가 ‘예외적인 수입 장벽’을 세워가면서 보호하려는 차량. 질식사를 앞둔 미국 자동차 3사에는 ‘마지막 보루’ 같은 존재다. GM, 포드, 크라이슬러의 트럭 판매책임자가 바짝 긴장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빅 3’는 신경이 거슬렸던 모양이다. 포드자동차의 내스카 운영이사로 이날 경기에 5대를 출장시킨 댄 데이비스 씨는 지난달 공개석상에서 도요타를 “침략자(predator)”라고 불렀다. 도요타가 자금력을 앞세워 스타급 운전자, 정비팀, 타이어 교환팀 등을 스카우트하면서 생긴 앙금을 드러낸 것이다.

일부 내스카 팬의 시선도 곱지 않다. 블로거들 사이에선 ‘일본차 레이싱에 반대하는 모임(FART)’이 결성됐고 내스카 개막일인 18일을 진주만 공격에 비유하는 글이 떠돈다. 포드에서 도요타로 옮겨간 왕년의 스타 데일 재릿 선수에겐 협박성 e메일까지 쏟아졌다.

상황이 험악해지자 뉴욕타임스에는 17일 “이성을 되찾자. 이런 식의 싸움은 애국주의가 아니라 인종차별”이라는 한 일본계 미국인의 글이 실리기도 했다.

첫날 경기에 출전한 캠리는 모두 4대. 다행인지, 불행인지 43명 출장 선수 가운데 상위권은 없었다. 재릿 선수가 22위, 나머지는 30, 35, 40위를 기록했다. 언젠가 캠리가 상위권에 진입한다면? 그때의 ‘빅 3’, 미국 언론 및 정치권의 반응이 궁금하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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