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케네디' 오바머, 대통령 출마 공식 선언

  • 입력 2007년 2월 11일 19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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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케네디' 버락 오바머(46)가 미국에서 새로운 정치 현상으로 떠올랐다. 그가 2008년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한 10일, 미국의 TV 뉴스 프로그램은 그의 이야기로 가득 채워졌다.

상원의원 3년차인 오바머는 아직 민주당 후보도 아니며 당내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라는 거목을 넘어설지도 확실치 않다. 그 자신이 2004년 말 방송에서 "4년 내 다른 선출직 도전은 없다"고 말할 정도로 새내기였을 뿐이다. 흑인 초선 정치인 오바머에게 미국은 왜 열광하는 것일까.

▽세대교체의 기수=오바머가 이날 출마 선언장으로 선택한 일리노이 주 스프링필드는 에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이 1858년 "내부가 갈라진 집은 서있지 못한다"는 연설로 흑인노예 해방의 정치투쟁을 시작했던 곳. 이곳에서 그는 세대교체를 통해 부패하고 낡은 현재의 워싱턴 정치를 극복하자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했다.

오바머는 이날 출마선언 연설에서 "케네디 시절 이후 사라진 '무엇인가'를 되찾아오자"고 말했다. 그는 "오늘 우리는 다시 한번 시대의 부름을 받았고 우리 세대가 응답할 때다. 이제는 (역사의) 책장을 넘길 차례"라고 힘줘 말했다.

"횃불은 우리 세대로 넘겨졌다"고 말한 케네디의 취임 연설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케네디와 하버드 법대 선후배이며 초선 상원의원으로 출사표를 던진 것까지 닮았다는 점을 십분 활용한 발언이다. 오바머 의원은 이 연설을 통해 국민의 변화 욕구를 정확히 읽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1,2년간 하루걸러 하나씩 터져 나오는 정치인과 로비스트의 추문(醜聞)은 오바머를 덜 오염된 정치인으로 부각시켰다. 80여년 만에 현직 대통령이나 부통령이 출마하지 않는 대선을 맞아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에서 난립하는 대선 도전자 대부분이 60대 이상인 상황에서 오바머의 참신한 이미지는 더욱 돋보일 수밖에 없다. 그 자신도 기성 정치권을 겨냥해 '지도력의 실패'를 집중 거론하고 있다. 당내 선두주자지만, 백악관 안주인을 8년간 지내면서 워싱턴 핵심인물이 된 클린턴 상원의원이 따라올 수 없는 강점이다.

워싱턴 정치에 태생적 거부감이 심한 미국인들은 달라져야 할 미국의 미래를 그에게서 엿본다. 조지아 주 주지사 출신으로 워싱턴 경험이 없던 지미 카터 전 대통령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기성 정치질서에 신물이 난 미국 유권자의 선택을 받았던 선례가 있다.

'흑인 후보'라는 이미지가 덜 한 것도 그에겐 강점이다. 지난달 ABC 방송이 민주당원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힐러리 의원이 흑인당원의 지지를 60% 얻었으나, 그는 20%에 그쳤다. 오히려 백인 민주당원의 오바머 지지가 17%로 나타날 정도였다. 그가 상대적으로 흑인보다 백인층에서 인기가 높다는 것이 수치로 드러난 셈이다.

▽이미지 뿐 실체가 없다?= 오바머 비판론자들은 "그에게는 실체가 없다. 스타를 갈망하는 언론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냈을 뿐"이라고 말한다. "목표의식만 강할 뿐 실행을 위한 각론(各論)이 없다"는 지적도 그를 괴롭혀 왔다.

그는 출마선언 연설에서 디지털 경제 정착, 교육투자 강화, 노동자 권리 보장, 값싼 의료보험 확대, 에너지 의존도 감소, 전 지구적 동맹 구축을 촉구했다. 물론 앞으로 그가 내놓아야 할 숙제지만, 구체적 실천방안은 아직 꺼낸 바 없다.

MSNBC는 지난해 말 아이오와 주 민주당 간부의 말을 인용해 "오늘 연설은 감동적이지만 다음에 올 때는 알맹이(substance)를 채워오길 바란다"는 유보적인 평가를 실었다.

워싱턴 경험부족을 강점으로 되돌리려 하는 그이지만 미국의 위상회복을 위한 대통령의 외교역량이 여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라는 점도 그에게 부담이다.

워싱턴=김승련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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