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울리는 남부깃발 내려라”

  • 입력 2007년 1월 17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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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상원 외교위원장으로 한국에 잘 알려진 조지프 바이든 상원의원, 같은 외교위 소속 크리스 도드 상원의원,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유엔대사를 지내면서 방북 외교를 펼친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 2008년 대통령 선거를 겨냥해 뛰는 미 민주당의 거물 3명이 15일 중앙 정계의 조명에서 소외돼 온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를 동시에 방문했다. 이날은 ‘흑인 민권운동의 아버지’ 마틴 루서 킹 목사 기념일. 방문 이유는 주도(州都) 컬럼비아에서 열린 흑인단체(NAACP)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바이든 상원의원은 15일 연설에서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의회 의사당 앞에 내걸린 남부 연방(confederacy) 깃발을 떼어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드 상원의원도 같은 주문을 내놓았다. 잠재적 대선후보 가운데 왜 민주당 정치인들만, 변변한 유명 도시 하나 없는 이 낙후지역을 찾아서 150년 전에 이미 끝난 남북전쟁의 깃발 이야기를 꺼낸 것일까.》

▽차별을 떼어 내라=워싱턴의 정치분석가들은 이날의 정치 행위를 ‘민주당의 링컨 프로젝트’로 해석한다.

링컨 프로젝트란 노예를 해방시킨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공화당 소속이었다는 점을 이용해 지난해까지 공화당이 벌인 ‘흑인 유권자 마음 얻기’ 구상. 그러나 공화당은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문에 뉴올리언스의 흑인 주민이 큰 피해를 보면서 실패를 인정해야만 했다. 그 결과 이제는 민주당 후보들이 흑인 표심 공략에 더욱 발 벗고 나선 것이다.

이 지역은 흑인 차별 흔적이 주 정부 조직에까지 남아 있다. 우선 남부 연방 깃발의 공공기관 게양이 유일하게 허용된다. 이 깃발은 노예제 사수를 앞세운 남부군의 상징물로 20세기 전반 인종차별조직의 흑인 사형(私刑) 현장에 늘 등장해 왔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의회는 흑인단체 및 미국 내 여론을 의식해 2000년 주 의사당 돔(dome)에서의 깃발 철거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완전 철거 대신 “주변의 남부군 참전용사 공원과 의사당 사이에 깃발을 게양할 수 있다”는 반 토막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흑인 지도자들의 숙원 사업인 ‘차별의 깃발’ 완전 철거를 공개적으로 요구하기에 ‘15일 의사당 옆’만큼 좋은 곳은 없다는 판단을 민주당 거물들이 내린 것으로 보인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 투표자 가운데 흑인 유권자 비중은 50%에 가깝다. 2008년 대선 후보 고지 점령을 위한 예비선거(당내 경선) 과정에서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를 이기려면 흑인 표심의 지지가 어느 주보다 더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 예비선거가 치러지는 시점이 50개 주 가운데 네 번째로 대폭 앞당겨진 점도 정치인의 ‘남부행’을 부채질했다. 50개 주에서 몇 차례로 나눠 열리는 예비선거는 뉴햄프셔, 아이오와 주를 비롯해 초반에 치러지는 주의 선거 결과가 당락에 큰 영향을 미쳐 왔다.

▽민주당의 텃밭=지난 30년간 미국 흑인 유권자는 90% 안팎의 지지를 민주당에 몰아 줬다. 공화당에는 흑인 상·하원의원이 단 1명도 없어 “공화당은 흑인 표를 포기했다”는 비난까지 나왔다.

그러나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2004년 대통령 재선에 성공하는 과정에서 ‘흑인 지지율을 15%로만 올려도 공화당의 장기 집권이 가능하다’는 점을 발견했다. 최대 접전지였던 오하이오 주에서 부시 후보가 승리한 데는 2000년 첫 당선 때 12%였던 흑인의 부시 지지율이 16%로 높아진 점이 결정적이었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당시 “언제부터인가 백악관 집무실에 링컨 흉상이 등장했고, 부시 대통령이 ‘공화당의 링컨’이라는 말을 자주 언급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러나 2006년 중간선거에서는 흑인 유권자의 공화당 지지는 8% 안팎에 불과했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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