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금동근]佛 국민가수 내쫓은 세금폭탄

  • 입력 2007년 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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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 알리데는 ‘프랑스의 엘비스 프레슬리’로 불리는 전설적인 록 가수다.

올해 63세인 그가 40여 년의 가수 생활 동안 판매한 앨범만 1억 장이 넘는다. 한국에서라면 한물 간 가수 취급을 받을 나이지만 그의 가창력과 카리스마는 젊은 가수를 압도하고도 남는다.

실력과 열정에 연륜까지 갖춘 그를 프랑스인들은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한다. 한국식으로 별명을 붙인다면 ‘국민 가수’라고 할까.

그런 그가 구설에 올랐다. 지난해 말 “지나친 세금 때문에 프랑스에서 더는 살 수 없다”며 스위스로 거처를 옮겼기 때문이다.

부자들은 대체로 “그 심정을 이해한다”며 공감을 표했다. 반면 “알리데, 당신까지…”라며 서운함을 드러내는 서민들도 있다.

지난해 ‘존경받는 프랑스인’ 순위에서 4위였던 그가 올해 초 조사에선 17위로 떨어졌다는 조사 결과도 보도됐다. 알리데 자신이 이런 반응을 당연히 예상했을 텐데도 그는 비난을 감수하며 이주를 감행했다. 세금이 도대체 얼마나 많기에 그랬을까.

보도에 따르면 그는 매년 소득의 70%가량을 세금으로 냈다. 지난해에는 약 660만 유로(약 74억 원)를 벌어 460만 유로 이상을 냈다. 이주 계획을 밝힌 뒤 잇따른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그동안 쌓인 불만을 털어놨다.

“나도 세금을 내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지나친 세금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일만 하는 소가 되기는 싫다.”

알리데가 스위스를 선택한 것은 부유세가 없기 때문이다. 알리데의 소득 수준으로 스위스에선 30만 유로 정도만 내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에서의 15분의 1이 채 못 된다.

한국으로 따지자면 나훈아 또는 조용필 급의 가수가 프랑스를 떠나자 정치권에까지 파문이 확산됐다. 더욱이 알리데는 여권 대선주자인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의 열렬한 지지자다. 대선을 앞두고 여야는 이 사안을 놓고 입씨름을 시작했다.

사회당의 세골렌 루아얄 후보는 “자신을 성공시켜 준 사람들을 위해 조국에 세금을 내는 건 당연하다”며 대권 경쟁자인 사르코지 장관을 겨냥해 “세금을 피해 프랑스를 떠나는 친구는 없는 게 낫다”고 비꼬았다.

사르코지 장관은 “많은 예술가, 연구자들이 나라를 떠나는 것은 프랑스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프랑스 사회의 근본적 문제를 지적하고 알리데를 두둔했다. 나아가 그는 “프랑스는 자격증도 없고 성공할 욕망도 없는 사람들만 떠받든다”고 비판했다.

부자들의 해외 이주는 오늘날 프랑스의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다. 스위스로 이주한 사람만 1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 매일 부자 1명씩 해외로 이주한다는 통계도 있다.

유럽에선 최근 10년 동안 오스트리아, 덴마크, 핀란드가 잇따라 부유세를 폐지했다. 자본의 해외 유출을 막고 국내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서다. 이번 일을 계기로 프랑스에서도 부유세가 쟁점으로 부각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에서도 부유세는 논란이 되고 있다. 정부가 이미 다른 형태의 세금을 통해 부유세를 간접적으로 걷기 시작했다는 지적도 있다. 유럽 선진국에서도 여전히 논란거리인 부유세에 외국인 기자로서 가타부타 따질 생각은 없다. 알리데의 선택이 바람직한지 역시 기자로서는 따지기 힘들다. 하지만 알리데가 한 인터뷰에서 내뱉은 한마디는 가슴 속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국가 지도자들의 무능함을 우리가 주머니를 털어 채워 줘야 하는가. 그런 무능한 지도자를 따라야 하는가. 내 대답은 ‘Non(농·아니요)’이다.”

금동근 파리 특파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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