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천광암]“돌아갈거나, 돌아갈거나”

  • 입력 2006년 1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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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호쿠(東北)지방의 벽촌 출신인 센 마사오(千昌夫·59)는 1977년 “돌아갈거나, 돌아갈거나”라는 후렴으로 유명한 ‘북국(北國)의 봄’을 발표해 대스타가 됐다. 300만 장이 넘게 팔려나간 이 곡은 30년이 다 된 지금도 한국 일본 중국의 노래방에서 애창되고 있다.

그에게는 또 하나의 이름이 있다. ‘부동산 왕 억(億) 마사오’다. 그는 가수 활동으로 쌓은 신용으로 돈을 빌려 부동산을 사들였다. 그러고 그 부동산을 담보로 다시 대출을 받아 또 부동산을 샀다. 저금리를 배경으로 1980년대 중반 불어 닥친 투기 광풍은 그를 세계적인 부자 반열에 올려놓았다. 전성기에 그의 자산은 3000억 엔에 육박했다.

그는 억세게 재운(財運)이 좋은 사나이였다. 첫 부인에게 위자료를 주기 위해 마지못해 처분한 홍콩의 한 호텔은 새 임자에게 넘어가자마자 톈안먼(天安門)사태를 만나 헐값이 됐다. 하지만 그의 질긴 재운도 거품(버블) 붕괴의 소용돌이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돈 되는 땅이나 건물은 있는 대로 팔아 빚을 줄였지만 그가 설립한 부동산회사는 2000년 1030억 엔의 빚을 안은 채 파산했다.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은 버블로 인해 천당과 지옥을 오간 일본 경제의 15년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라고 많은 일본인은 말한다. 하지만 한때나마 자가용 비행기와 헬기를 각각 3대씩 보유하고 극도의 호사를 누려 본 그와는 달리 버블의 달콤함을 조금도 맛보지 못한 채 빚더미에 나앉은 이도 많다. 급등하는 맨션(한국의 아파트에 해당) 값을 보다 못해 ‘상투’에서 내 집 마련을 한 회사원들이 대표적이다.

1990년 수도권에서 맨션을 산 사람들의 예를 보자. 이들이 구입한 맨션의 평균가격은 6023만 엔. 4년 전보다 2배 비싼 가격이었다. 5년 뒤인 1995년 말 평균 집값은 반 토막인 3011만 엔으로 떨어졌다. 당시 도쿄에 근무하는 보통 회사원이 3년 반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하는 금액이 연기처럼 사라진 것이다. 이들을 더욱 절망시킨 것은 아직 갚지 못한, 그것도 집값보다 1132만 엔이나 많은 4143만 엔의 대출금이었다. 1988∼1992년 집을 산 이들도 정도 차이는 있지만 자산가치보다 빚이 많은 ‘깡통 맨션’을 붙들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투기는 고사하고 내 집을 장만할 엄두도 못낸 서민도 버블 붕괴의 유탄을 맞았다.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줄 이어 도산하면서 일자리는 불안해지고 소득은 줄었다. 정부가 부실채권을 정리하고 경기를 떠받친다며 쏟아 부은 천문학적인 돈은 언젠가는 납세자들이 부담해야 할 나랏빚으로 남아 있다. 공원마다 넘쳐 나는 노숙자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치솟은 자살률도 버블 붕괴가 아직까지 남겨 놓은 그늘이다.

일본 정부는 1993년 경제백서에서 “거품에 경제적 장점은 없고 결점만 있다는 것이 경험이 가르치는 바”라고 회고했다. 그러나 일본 경제의 ‘잃어버린 10년’은 거품이 있다고 해서 급작스럽게 붕괴시키는 것도 모두를 패자로 만들 뿐이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 그런데도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최근 친노(親盧)그룹 강연에서 “일부 지역의 가격 과잉은 일본처럼 반드시 보정하는 기간이 온다”고 자신 있게 예언했다고 한다. 국정을 책임졌던 고위 공직자라기보다는 먼 나라 구경꾼이 한 이야기가 아닌지 귀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한국 경제는 지금 집값 상승을 막으면서 한편으로는 일본식 거품 붕괴까지 걱정해야 하는 살얼음 위에 서 있다. 작은 동네잔치까지 마다않고 찾아다니며 “돌아갈거나, 돌아갈거나”를 아무리 불러도 빚더미를 벗어날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한물간 가수의 고달픈 신세를 면하기 위해, 한국경제가 가야 할 길이 멀고 험하게만 느껴진다.

천광암 도쿄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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