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끝난 지 어언 60여 년. 아직도 산투스 씨처럼 강제 징집된 고무병사 수백 명이 아마존에서 잊혀 가고 있다고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이 14일 전했다.
▽고무병사에 대한 착취=고무병사 프로그램이 시작된 배경은 일본의 진주만 공습(1941년 12월 7일). 미 함대의 손실로 고무 수입 원천이던 말레이시아에 접근하기 어려워지자 프랭클린 루스벨트 당시 미 대통령이 브라질의 독재자 제툴리우 바르가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수백만 달러에 이르는 차관과 현물 제공 약속을 받은 브라질 정부는 곧바로 고무 생산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대규모 강제징집에 나섰다.
고무병사 5만5000여 명의 절반은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말라리아 황열병으로 숨졌다. 자정 직후에 정글을 헤치고 들어가 라텍스를 추출하는 노동의 강도는 견디기 힘들었다. 라텍스에 약품을 타다가 눈이 먼 병사도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이들을 괴롭힌 것은 고향으로 돌아갈 희망이 없었다는 것.
‘엘도라도(황금의 도시) 아마존’ ‘승리를 위한 고무’라는 슬로건을 믿고 따라온 이들이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도 고향을 찾지 못했다. 고무농장 주인들이 이들을 노예처럼 부렸고, 식비와 의류비를 과다 책정해 빚쟁이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돈도 없고, 고향으로 돌아갈 교통편도 구하지 못한 고무병사들은 아마존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
브라질 정부는 1988년 개정한 헌법에서 고무병사에 대해 최저생계비(350달러)의 2배에 해당하는 연금 지급을 명시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고무병사는 필요한 서류를 준비할 수 없었다.
어렵사리 서류를 준비한 고무병사들도 2차 대전 당시 유럽 전투에 참전한 군인들의 10분의 1에 불과한 연금을 받았을 뿐이다.
산투스 씨는 “우리는 정글에 버려져 극도의 고통을 겪었다”며 “이제 생의 마지막을 향하고 있는 나에게 국가가 올바른 대접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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