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사태 둘러싼 세계의 긴박한 표정

  • 입력 2006년 11월 14일 20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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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몇 명을 뺄 것인가….' 미국 워싱턴 정가가 미군의 이라크 철수를 놓고 초읽기에 들어갔다. 13일 미국의 초당파 모임인 이라크스터디그룹(ISG)이 백악관을 찾았다. 이라크에서는 폭탄테러가 기승을 부리고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이란, 시리아와 손잡자는 제안을 하고 나섰다. 모두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을 옥죄는 요소들이다.

#1. 13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

부시 대통령은 아침 일찍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과 리 해밀턴 전 민주당 의원이 이끄는 ISG 구성원들을 만났다. ISG는 이날 딕 체니 부통령과 스티븐 해들리 안보보좌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등 안보 관련 고위 관리들도 면담했다.

ISG는 이른 시일 안에 부시 대통령에게 이라크 정책 건의서를 제출할 예정. ISG의 건의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군의 전면 철수까지는 아니더라도 단계적이고 부분적인 철수는 반드시 포함될 것이라고 미 언론들은 보도하고 있다.

또 그동안 부시 대통령이 '악의 축'이라고 비난해온 이란과 시리아를 설득해야 한다는 건의도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이라크와 인접한 이란과 시리아로부터 이슬람 저항세력과 무기가 이라크로 계속 유입되면 유혈사태를 멈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이라크 철군은 안 된다고 고집해 온 부시 대통령도 ISG의 건의서를 마냥 거부할 수만은 없는 막다른 상황에 몰렸다.

#2. 13일 이라크 바그다드

바그다드의 북동쪽 사브 부근 시아파 지역. 정오쯤 큰 폭음과 함께 땅이 흔들렸다. 누군가 소형 버스에 몰래 설치한 폭탄이 터져 승객 20명이 숨지고 18명이 부상했다. 벌써 3일째 계속 일어나고 있는 대규모 폭탄테러였다. 또 이날 오전에만 바그다드 주변 지역에서 모두 10명이 괴한의 총격을 받아 숨졌다.

전날인 12일에도 바그다드 서부의 경찰 특공대원 모집소에서 2차례의 자살 폭탄테러가 동시에 일어나 35명이 숨지고 60명이 부상했다. 11일에는 바그다드 동부 소르자 도매시장에서 차량폭탄 2개가 원격 조종으로 터져 8명이 숨지고 최소한 38명이 부상했다.

미국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참패한 뒤 치안 상황은 나날이 악화되고 있다.

누리 알 말리키 이라크 총리는 6개월 안에 종파 간 무력충돌을 종식할 수 있다며 조속한 미군 철수를 주장해 왔다. 그러나 존 애비제이드 미 중부사령관은 이날 말리키 총리를 찾아 무력충돌 종식의 근거를 내놓으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3. 13일 영국 런던

런던 시장 주최의 만찬장. 연단에 오른 블레어 총리는 "이라크 문제 해결을 위해 이란과 시리아를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이라크전쟁을 놓고 부시 대통령과 줄곧 보조를 맞췄던 블레어 총리의 '절연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블레어 총리는 "외부 극단주의 세력의 개입으로 이라크전쟁의 성격이 바뀌었으므로 서방의 전략도 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부 세력의 침입을 막기 위해선 이란, 시리아와의 제휴도 고려할 수 있다는 것. 또 이란을 겨냥한 군사적 대응에도 처음으로 반대 의사를 명확히 밝혔다.

부시 대통령은 이란과 시리아를 '악의 축'으로 규정한 뒤 절대 타협할 수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블레어 총리가 이런 상황을 뻔히 알면서 '이란, 시리아와의 타협안'을 제시한 것을 놓고 중간선거로 입지가 약해진 부시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영국 더 타임스는 "블레어와 부시의 공동 전선에 처음으로 균열이 생겼다"고 지적했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파리=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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