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강자는 없다”… 지구촌 선거판 ‘살얼음 승부’

  • 입력 2006년 9월 23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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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연합의 65년 장기집권 종식’을 불러온 스웨덴의 9·17총선. 의미가 큰 선거였지만 선거에서 이긴 중도우파연합과 패배한 중도좌파연합의 득표율 차이는 불과 1.9%포인트에 불과했다. 스웨덴뿐이 아니다. 올해 들어 치러진 세계의 주요 선거는 박빙(薄氷)의 승부가 많았다. 멕시코도 그랬고, 이탈리아도 그랬다. 국력 차이가 있지만 체코와 코스타리카도 표차를 얘기하기가 어려울 정도의 승부였다. 이들 나라는 표차가 겨우 0.1∼0.3%포인트에 불과했다.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해 9월의 독일 선거도 기민-기사연합이 35.2%, 사민당이 34.2%였다. 1%포인트 차이. 한마디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최근 들어 눈에 띄는 것은 이 같은 ‘유권자의 양극화 현상’을 세계화의 결과로 분석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

○ 세계화로 양극화되는 유권자

시사주간 타임의 편집 컨설턴트를 지낸 리처드 호니크 씨는 최근 미국 예일대의 온라인 잡지인 ‘예일글로벌’에 기고한 글에서 “세계화는 혜택 받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간의 갈등을 심화시키고 이는 표심의 양극화로 나타나 어느 세력도 절대적 다수파가 될 수 없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그는 2000년, 2004년 미국 대선을 비롯해 지난해 독일 총선, 그리고 올해 유럽 주요국가의 선거가 모두 ‘면도날처럼 얇은(razor thin)’ 승부에 그칠 수밖에 없었던 사회경제적 배경도 여기에 있다고 덧붙였다.

1%포인트 안팎의 표차로 선거 승패가 갈린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이슈가 된 것은 일자리. 스웨덴 싱크탱크인 탑투스 연구소의 니마 사난다지 소장도 스웨덴 영자신문 ‘로칼’ 18일자 칼럼에서 “집권 좌파연합은 지난 몇 년 동안 실제적인 실업률을 낮추려는 노력보다 ‘실업률 통계와의 전쟁’에만 몰두해 왔다”고 지적했다.

이탈리아도 마찬가지. ‘이탈리아 최고의 부자’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개인 스캔들도 있었지만 그의 우파연합에 ‘0.1%포인트의 뼈아픈 패배’를 안긴 것은 역시 유럽연합(EU)의 연평균에도 못 미치는 경제성장률과 실업률, 즉 일자리 문제였다.

일각에서는 최근 유럽 선거를 두고 ‘좌파의 보수화’와 ‘우파의 진보화’가 정치적인 수렴점을 찾은 결과라는 분석도 없지 않다. 이를테면 뉴라이트와 뉴레프트의 경쟁이 그만큼 치열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런 정치적 수렴점을 만든 것도 세계화 진전에 따른 일자리 문제였다는 게 일반적인 진단이다.

중남미에서 박빙의 승부가 나온 배경은 글로벌 경제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확산의 직접적인 결과물로 보인다.

7월 2일에 실시된 멕시코 대선에선 4100만 표 가운데 35.8%를 얻은 집권 국민행동당의 펠리페 칼데론 후보가 35.3%를 얻은 좌파 민주혁명당의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후보를 득표율 0.5%포인트(22만 표) 차로 눌렀다.

2월 5일에 실시된 코스타리카 대선에선 중도우파인 국민해방당(NLP)의 오스카르 아리아스 전 대통령이 40.5%를 얻어 좌파 후보인 시민행동당(PAC)의 오톤 솔리스 후보(40.3%)에 앞섰다. 0.2%포인트 차였다. 멕시코는 일자리, 코스타리카는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문제가 핵심 이슈였다.

○ 엇갈리는 평가들, 그러나 반(反)세계화가 해답은 아니다

박빙 선거가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을 조짐을 보이자 그에 비례해 우려도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우열을 가리기 힘든 선거 결과가 나오면 패자가 쉽게 승복하지 않기 때문에 정치적 통합을 저해하는 것이다.

멕시코 대선이 7월 초에 실시됐지만 여전히 선거 부정 의혹을 둘러싼 혼란이 이어지고 패자인 오브라도르 후보는 ‘저항정부’ 수립까지 공언하고 있다. 재검표 소동은 이탈리아 총선, 체코 총선, 코스타리카 대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승자에 대한 불신은 사회적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정치 불안정으로 이어져 외국기업의 투자를 머뭇거리게 함으로써 경제에도 영향을 미친다. 경제의 불확실성은 실업과 빈곤으로 이어지면서 국력을 낭비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드는 셈이다.

특히 실업 상태의 지속, 연금 기금의 고갈, 막대한 공공부문 적자, 이민 문제 등 광범위한 국민적 컨센서스 없이는 해결이 불가능한 현안이 산적한 현대사회에서 ‘반쪽 승부’는 무능한 정부를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호니크 전 컨설턴트는 “반쪽 승부로 집권한 세력들은 점차 애국적 파시즘에 호소하려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며 “유럽과 아시아에서 벌써 이런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그는 “지도자가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고 애국주의에만 호소하면 양극화가 더욱 심해지고 무역전쟁만 불러일으킬 뿐”이라며 반세계화에서 해답을 찾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는 “스웨덴형으로 대표되는 유럽 선거와 멕시코가 상징하는 중남미 선거는 민주주의 성숙도에서 차이가 있다”며 “민주주의가 성숙한 국가는 근소한 표차에 따른 갈등을 봉합했지만 민주주의 역량이 약한 나라에선 오히려 갈등이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주의 성숙도에 따라 후유증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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