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고이즈미 총리 집권 5년…‘작은 정부’로 경제 살렸다

  • 입력 2006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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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은 인간의 숙명이다.”

올해 초 도쿄(東京)의 한 가부키전용극장에서 전국시대의 무장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생애를 그린 ‘노부나가’를 감상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밝힌 소감이다.

‘싸움꾼’ ‘괴짜’로 불리는 고이즈미 총리가 26일 집권 6년째로 접어든다. 전후 일본의 총리 가운데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전 총리에 이은 3번째 장기 집권이다.》

고이즈미 총리의 호전성과 고집은 한국 및 중국과의 관계를 과거 어느 때보다 껄끄럽게 만든 원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 경제를 10년이 넘는 긴 불황에서 벗어나게 만든 정치적 동력으로 꼽힌다.

무엇보다 다수 일본 국민의 여론이 이를 인정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의 최근 여론조사에서 일본 국민의 70%는 고이즈미 정권의 실적을 평가한다고 응답했다. 평가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28%에 불과했다.

고이즈미 정권의 성과에 대한 항목별 평가에서는 우정 민영화가 44.3%로 단연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25.0%인 도로공단 민영화였다.

고이즈미 총리가 우정 민영화에 소매를 걷어붙인 것은 공기업인 일본우정공사가 민간으로부터 천문학적인 자금을 빨아들여 민간의 창의적인 경제활동을 압박한다고 봤기 때문.

지난해 기준으로 우정공사의 보유자금은 우편저금 230조 엔, 간이보험 120조 엔 등 무려 350조 엔에 이르렀다. 더구나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스타일 때문에 우정공사가 10년 안에 경영파탄 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았다.

문제의 심각성이 빤히 보였지만 여기에 개혁의 메스를 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우정공사 직원들은 물론 정부 관료들도 기득권을 뺏기는 민영화를 탐탁지 않게 여긴 데다 이들과 공생관계를 이루고 있는 ‘우정족(族)’ 의원들까지 강력히 반발했기 때문이다.

이를 잘 보여 준 것이 지난해 8월의 우정 민영화 관련 법안에 대한 참의원 표결이다. 참의원 의원 233명이 출석한 가운데 이뤄진 표결에서 우정 민영화 관련 법안은 찬성 108표, 반대 125표로 부결됐다. 특히 여당인 자민당 의원 22명마저 반란표를 던졌다.

고이즈미 총리는 중의원을 해산하는 도박에 가까운 승부수로 응수했다. 선거 결과는 자민당의 압승으로 중의원 의석이 개헌 선을 넘어섰다.

정치 생명을 걸고 추진해 온 우정 민영화에 성공한 고이즈미 총리는 ‘작은 정부’ 개혁에 본격적인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2010년까지 공무원 수를 5% 감축하고 신분 보장, 급여, 연금 등 각 분야에 걸쳐 공무원의 특혜를 없애거나 줄이며 기득권 집단인 관료들을 향해 개혁의 칼날을 겨눈 것이다.

집권 기간 내내 ‘관(官)에서 민(民)으로’를 외쳐온 고이즈미 개혁의 경제적 성과는 구체적인 수치로도 뒷받침된다.

일본의 경기는 고이즈미 총리가 취임한 이후인 2002년 2월부터 지금까지 51개월째 호황을 이어가고 있다. 설비투자경쟁이 대기업에 이어 중소기업으로 확산되고 있고 일자리도 넘쳐나고 있다.

일본 국민은 전후 최장(最長)으로 꼽히는 이자나기 경기(1965년 11월∼1970년 7월)에 이어 두 번째로 긴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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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격차 사회’…경쟁 강조하다 소득 양극화-중산층 휘청▼

‘격차(格差)사회’, ‘약육강식’, ‘승자와 패자’.

이 단어들이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집권 5주년을 맞는 일본에서 새삼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사회 전반을 경쟁체제로 개편하는 고이즈미식 구조개혁이 국민 소득의 양극화를 가져왔고 이에 따라 일본의 안정을 상징하던 ‘1억 중산층’ 구조가 깨지고 있다는 비판이다.

당초 이런 비판은 야당이 제기했으나 이제는 자민당 내에서도 ‘약자를 위한 윤리적인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근 요미우리신문이 고이즈미 총리 5년을 맞이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9%가 ‘개혁으로 격차가 확대됐다’고 평가했다.

후생노동성이 1월 발표한 지니계수는 2001년 0.47에서 2005년에는 0.50으로 확대됐다. 지니계수는 소득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로, 1에 가까울수록 격차가 심하다는 뜻.

격차사회 문제는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와 더불어 ‘포스트 고이즈미’ 경쟁의 또 하나의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고이즈미의 개혁몰이에 눌려왔던 자민당 각 파벌이 9월 총재선거에서 이를 부각시킬 태세이기 때문이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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