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그는 요르단의 중산층 집안에서 성장했다. 부모는 이슬람교를 엄격하게 믿으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변호사가 됐지만 의뢰인을 모으는 수완은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용돈을 대줘 생활이 쪼들리지는 않았다.
그는 2001년 초 관광 비자로 미국에 갔다. 새 출발을 하기 위해서였다. 라이언이라는 이름으로 온타리오 국제공항에서 운전사 자리를 얻었다. 곧 마리화나를 피우고 ‘니르바나’ 같은 반항적 밴드의 음악을 즐겨 들으며 술집을 드나들었다.
고국에서 배운 영어 실력도 여자들을 유혹하는 데 모자람이 없었다. 키는 168cm 정도였지만 ‘환한 미소’는 여자들의 경계심을 무너뜨리는 강력한 무기였다. 친구들은 “라이언이 미국에서 체감한 자유를 사랑했다”고 전했다.
#굴레
그해 9·11테러가 터졌다. 그의 첫 반응은 “모든 무슬림들이 저렇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친구들에게 “나는 오사마 빈라덴과 알 카에다를 혐오한다”고 공공연히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도 역시 무슬림이었다.
이슬람교를 비방하는 공항의 동료 직원에게 “죽이겠다”며 심하게 말다툼을 한 뒤 일을 그만두었다. 2002년 말 요르단으로 돌아왔지만 일자리를 찾지는 못했다. “미국 시절이 그립다”고 친구에게 말하기도 했다. 이 무렵 기도와 금식을 철저히 하는 독실한 신자가 됐다.
2003년 7월 다시 비자를 얻어 미국에 입국하려 했지만 저지당했다. 테러범 목록에 들어 있지는 않았지만 입국 목적과 비자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후 그는 요르단과 사우디아라비아를 오가는 트럭 운전사가 됐다고 부모에게 알려왔다.
#해석
그는 2005년 2월 이라크 바그다드 인근에서 차량폭탄을 터뜨려 132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단일 폭탄테러로는 희생자 수가 가장 많은 사건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교육받은 중산층을 포섭하려는 요르단의 한 조직과 아들이 친하게 지냈다”고 말했다. 그의 친구들은 “신나는 일을 찾으려는 성향이어서 이용당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한 범죄 심리학자는 “살아서 이룰 수 없는 목표를 죽어서 달성하려고 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어느 해석이 맞는지는 알 수 없다. 폭탄 차량의 운전대에 쇠사슬로 묶여 있던 한쪽 손만이 그의 신원을 밝혀 준 유일하게 확실한 사실이었다.
이 진 기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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