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로루시 민주횃불 꺼지나…부정선거 항의시위 시들

  • 입력 2006년 3월 2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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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유럽에서도 독재가 통할까. 금세기 들어 옛 소련권인 그루지야, 키르기스스탄, 우크라이나를 흔들었던 민주화 도미노 현상은 ‘유럽에 남겨진 마지막 폭정의 거점’으로 미국이 거론한 바 있는 벨로루시에서 멈춘 듯하다.

선거 당일인 19일 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의 3선 확정과 선거 부정에 항의하며 눈보라 치는 수도 민스크의 ‘10월 광장’에 모여 있던 1만여 시위대는 20일 새벽 자진 해산했다.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2년 전 선거 결과에 불복해 키예프 독립광장에 진을 치고 밤낮으로 시위를 벌인 끝에 ‘오렌지 혁명’을 성공시킨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야당 대선 후보인 알렉산드르 밀린케비치 씨 등은 20일 밤 다시 모이자고 촉구했지만 얼마나 모일지 의문이다. 독일 DPA통신은 경찰 소식통을 인용해 “19일에는 시위대와 맞서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전했다. 20일 시위가 벌어지면 강경 대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외신에 따르면 경찰은 19일 밤 10월 광장에서 열린 콘서트 기획자의 아파트를 20일 ‘폭발물’을 찾는다며 수색했다. 또 시위를 지지하는 주요 인터넷 사이트들은 해킹을 당했다. 국영방송은 “공정 선거였다”는 일부 선거감시단원의 인터뷰 장면과 시위대 가운데 술을 마시고 마리화나를 피운 극소수의 모습만 번갈아 내보내며 대국민 선전을 계속했다.

벨로루시는 혁명 전 우크라이나와 상황이 다르다. 벨로루시 의회에는 단 한 명의 야당의원도 없다. 법원도 정부에 예속돼 있다.

옛 소련 시절을 연상시키는 국가보안위원회(KGB)라는 이름의 비밀경찰이 활동하고 있다. 방송과 신문은 모두 국영이다. 국민 90%가 국영기업에서 일하며 사유재산도 거의 없다. 우크라이나에서처럼 반정부 활동 자금을 몰래 대줄 사람도 없다는 얘기다.

러시아는 ‘백(白)러시아’로도 불리는 벨로루시를 유럽 최후의 전략적 보루로 여기고 지원해 왔다. 세르게이 이바노프 러시아 국방장관은 지난달 “벨로루시와 러시아는 한민족”이라며 벨로루시의 안정을 강조했다.

러시아가 올해 초 우크라이나에 대해 가스 공급가격을 5배 가까이 올리겠다며 위협한 것은 벨로루시 국민에게도 위협적이었다. 벨로루시가 독립국가연합(CIS) 국가 중 가장 높은 생활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저가 가스 공급 등 러시아의 경제적 지원 덕분이다. 러시아는 서유럽으로 가는 가스관의 경유지에 우크라이나를 빼고 벨로루시와 폴란드를 넣겠다는 ‘당근’도 이미 던진 바 있다.

송평인 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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