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G8 정상회의 앞두고 미-러 신경전 가열

  • 입력 2006년 3월 14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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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러시아와 미국 사이의 가장 큰 외교 현안은 G8(선진7개국+러시아) 정상회의를 둘러싼 논쟁이다. 순번제인 의장국을 올해는 러시아가 맡았기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5일 만모한 싱 인도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7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리는 G8 정상회의에 옵서버로 초청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인도를 방문한 직후였다. 의장국 지위를 이용해 동맹국 인도에 선심을 쓴 것이지만, 다분히 미국을 의식한 행동이었다.》

▽고개 드는 ‘러시아 축출론’=꼭 그 일이 아니더라도 요즘 미국에서는 “G8에서 러시아를 몰아내자”는 목소리가 높아 가고 있다. 최근 푸틴 정권이 옛 소련식 독재체제로 돌아가고 있다는 비판이 일면서부터다. 경제력도 다른 회원국보다 크게 떨어지고 민주주의까지 후퇴하고 있는 러시아가 G8에 있을 자격이 없다는 것.

미국 공화당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미국이 러시아에서 열리는 G8 정상회의를 보이콧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펴고 있다. 최근 러시아가 이란과 팔레스타인 문제에서 미국의 뜻을 따르지 않자 이런 주장이 더욱 힘을 얻고 있다.

물론 러시아 전문가인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처럼 “러시아를 압박하기보다는 잘 설득해야 한다”는 신중한 의견도 많다. 현재로서는 부시 대통령이 상트페테르부르크 정상회의 불참이나 러시아 축출 같은 극단적인 결정을 내릴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 정상회의가 다가올수록 미국 내 논쟁은 더욱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G8 정상회의는 예정대로 열리겠지만 다른 회원국들이 러시아의 민주주의 후퇴를 우려하는 공동성명을 내거나 러시아를 뺀 다른 정상이 별도의 모임을 가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러시아의 버티기=반면 러시아는 어렵게 얻은 G8 회원국 자격을 지키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1월 31일 연두회견에서 “러시아가 빠진 G8은 살찐 고양이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G8이 서방 부자국가들의 친목 모임으로 회귀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

푸틴 대통령은 1일 G8 정상회의 의장 자격으로 미국 뉴욕타임스나 일본의 아사히신문 같은 세계 주요 언론에 기고까지 했다. 이번 G8 정상회의의 가장 큰 의제는 에너지 문제. 푸틴 대통령은 “에너지 대국 러시아가 에너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지구촌의 이웃들을 배려하겠다”고 약속했다.

1991년 당시 G7 모임에 처음으로 초청된 러시아는 우여곡절 끝에 1998년 G8의 일원이 됐다. 러시아는 ‘강대국의 사교클럽’이라고 비아냥대면서도 국제 정치와 경제를 쥐락펴락해온 이 모임에 들어가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옛 소련 붕괴와 함께 추락했던 국제 위상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러시아는 나아가 이번에 G8 의장국이 된 것을 계기로 미국 중국과 함께 세계 ‘3강 구도’ 정립까지 노리고 있다.

러시아는 최근 ‘오일머니’에 힘입어 7년 연속 7% 안팎의 고도성장을 계속하는 등 정치경제적 안정을 보이고 있어 G8 회원국 자격이 충분하다고 자신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G8 정상 중 러시아의 회원국 자격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며 러시아의 축출 가능성을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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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김기현 특파원 kimkihy@donga.com

▼G8 확대개편론 확산…“韓-中-印등 포함 G20으로 늘려야”▼

국제사회에서는 G8 중심의 세계 질서에 대한 비판론이 많다.

G8은 1975년 창설된 이후 경제뿐 아니라 정치, 외교, 사회 분야에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한때 ‘비공식 세계 정부’로 불렸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이빨 빠진 호랑이’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없지 않았다.

미국 예일대 제프리 가튼 경영대학원장은 최근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매년 경제선진국들의 정상회의가 열리지만 부자 나라들의 화려한 말잔치로 끝났다”면서 G8 무용론을 제기했다. 그는 “중남미 금융위기와 아시아 외환위기 등 경제적인 문제는 물론 기아, 정보기술 불균형 문제에 대처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모임으로 전락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중국 인도처럼 경제가 급성장하고 국제적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국가들을 합류시켜야 한다는 ‘확대 개편론’이 제기된 지도 이미 오래다.

클로드 비필드 미국기업연구소(AEI) 연구원은 “세계 경제정부와 같은 예전 위상과 대처 능력을 갖기 위해선 중국 인도 한국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을 포함한 G20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2004년 세계 GDP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3.9%로 G8 회원국인 이탈리아(3.7%) 캐나다(2.3%) 러시아(1.1%)보다 높다.

이호갑 기자 gd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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