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유관-가스관에 흐르는 정치경제학

  • 입력 2006년 1월 4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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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부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통해 유럽으로 가는 가스관을 부분 차단해 유럽 전역이 초유의 가스대란을 겪으면서 ‘제2의 에너지 무기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에너지 생명선’인 파이프라인(송유관과 가스관)을 둘러싼 각국의 갈등과 경쟁, 힘겨루기도 날로 격화되고 있다.

▽파이프라인은 ‘에너지 무기화’의 수단?=이번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가스공급 중단 사태에서 보듯 파이프라인은 곧 생명선이다. 한국은 가스와 원유를 전량 해상으로 공급받고 있지만 유라시아 대륙 상당수 국가들은 파이프라인으로 석유와 가스를 주고받고 있다.

더욱이 세계적으로 에너지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대규모 파이프라인 건설이 늘고 있다. 파이프라인 건설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지만 일단 완공되면 수송비가 저렴해지고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반면 공급처를 바꾸기 쉽지 않고 공급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다. 경제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공급국에 종속될 우려가 큰 것이다.

러시아의 힘이 최근 다시 커지고 있는 것도 파이프라인을 통해 유럽을 비롯한 주변국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위상 때문이다.

파이프라인 차단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러시아는 그루지야에도 일시적으로 가스 공급을 중단한 적이 있다.

또 중앙아시아의 소국인 투르크메니스탄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로 가는 가스관을 잠그기도 했다. 파이프라인의 게임에서는 국력의 차이를 떠나 생명선을 쥔 국가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

1991년 사회주의권이 붕괴하면서 옛 소련 국가와 위성국들은 정치적 독립을 얻었다. 상당수 국가는 러시아권에서 이탈해 서방으로 접근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동유럽 국가는 에너지는 여전히 러시아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가스공급 가격을 하루아침에 5배 가까이 올려달라고 요구하고 우크라이나가 이를 거절하자 일방적으로 가스공급을 중단한 러시아의 행동은 이탈 조짐을 보이는 옛 동맹국들에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다.

▽노선도 힘의 논리로 결정=대규모 파이프라인 계획이 세워질 때마다 자국에 유리하도록 노선을 결정하려는 각국의 외교전이 치열하다. 경제논리보다는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한 ‘힘의 논리’가 우선이다.

지난해 말 러시아와 독일 주도로 공사가 시작된 북유럽가스관(NEGP)은 러시아가 발트3국과 폴란드를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추진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러시아는 과거사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문제로 이들 국가와 불편한 관계다. 하지만 기존의 독일로 가는 가스관은 발트3국과 폴란드를 지난다. 러시아로서는 ‘잠재적 적대국’을 통과하는 가스관 대신 발트해를 통해 직접 서방으로 가스를 수출할 길을 연 것이다. 발트3국과 폴란드가 강력하게 반발한 것은 물론이다.

지난해 5월 미국 주도로 개통된 바쿠∼트빌리시∼제이한(BTC) 송유관은 반대로 서방의 러시아 견제용이다. 카스피해에서 생산된 원유를 러시아를 통하지 않고 지중해를 통해 서유럽에 공급하기 위한 것.

이전까지 카스피해 원유는 흑해의 러시아 항구인 노보로시스크를 이용하는 CPC라인을 통해 수송됐다. BTC 건설로 러시아는 큰 타격을 입었다. 서방은 러시아를 아예 BTC 건설 컨소시엄에 넣어주지도 않았다.

러시아는 동시베리아∼태평양 송유관 노선을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치열한 경쟁 때문에 곤란한 입장에 처하기도 했다. 어느 한 나라에만 유리하게 노선을 잡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올해 초 확정될 노선안에 따르면 1단계 구간은 중국에 유리하도록 러-중 국경을 따라, 2단계는 일본을 겨냥해 극동까지 연결될 예정이다.

그러나 1단계 구간은 2008년까지 완공 예정이지만 2단계 공사는 추진 여부 자체가 불투명하다. 그래서 일단 중국의 ‘판정승’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모스크바=김기현 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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