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경제패권 노리는 中…동남아 주도권 장악 잰걸음

  • 입력 2005년 12월 7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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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선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와 첫 동아시아정상회의(EAS)가 개최된다. 중국은 ‘아세안+3’을 중심으로 유럽연합(EU)과 같은 동아시아공동체(EAC)로 발전시킨다는 구상이다.

‘태평양 국가’임을 자임하는 미국이 배제된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이 무르익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미국 내에서는 동남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국은 동쪽으론 한국과 일본, 북으론 러시아, 서쪽으론 인도에 막혀 있다. 동남아가 유일한 출구인 셈이다.

미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는 ‘폴리시 리뷰’ 최신호에 ‘중국의 아시아 원정’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싣고 “미국이 이제라도 적극 나서지 않으면 동남아 지역은 새롭게 떠오르는 ‘슈퍼 파워’ 중국의 헤게모니 아래 놓이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근 중국의 대(對) 아세안 외교는 철저하게 ‘중국이 주도, 미국은 배제’라는 방향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게 보고서의 골자. 중국은 이미 아세안 소속 국가들과 개별적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통해 ‘분할 점령(divide and conquer)’ 정책을 펴는 한편 ‘아세안+3’을 경제 무역은 물론 정치 군사 문제까지 논의하는 정상회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보고서는 중국이 엄청난 물량의 수입국이라는 지위를 활용한 경제적 유인책과 함께 각종 경제적 군사적 불이익을 위협하는 ‘공포의 외교’를 활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싱가포르는 대만과의 협력을 중단하라는 거센 압력에 직면해 있고, 필리핀은 중국에 사실상 굴복한 형국이다. ‘미국의 아시아 보안관’으로까지 불리는 호주와 미국이 방위 공약을 내건 대만, 양국을 둘러싼 상황에도 미묘한 균열 조짐이 일고 있다.

특히 중국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내 안보정책회의를 신설하는 등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기구들을 늘려가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미국은 올해 중국과는 부장관급 전략회담을 시작하면서 호주 일본과는 차관급 회담으로 격하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보고서는 비판했다. 이 같은 정책 실패로 인해 미국은 동남아 지역에서 ‘신뢰의 실추’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보고서는 미국이 동남아지역에 다시 초점을 맞춰 적극적인 개입에 나서야만 미국에서 중국 쪽으로 헤게모니의 축이 이동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미국은 무역투자기본협정(TIFA), 항공자유화협정(OSA) 같은 ‘당근’과 함께 중국이 보호하는 미얀마 군사정권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하는 ‘채찍’도 구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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