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사학자 김정명교수 부인 암투병에 애태워

  • 입력 2005년 1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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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安重根) 의사 관련 사료 발굴에 공이 큰 재일사학자 김정명(金正明·일본명 이치카와 마사키·76·사진) 아오모리(靑森)대 명예교수가 불우한 만년을 보내고 있어 주변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한반도 통일 국제학술 심포지엄’ 개최 등 정력적으로 활동하던 그가 쓰러진 것은 1993년. 설상가상으로 작은 옷가게를 하며 병간호를 해온 부인 이치카와 에미코(市川惠美子·65) 씨마저 최근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입원 치료를 받게 됐다.

김 교수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한 뒤 안 의사가 옥중에서 집필한 ‘동양평화론’의 전문을 찾아내 세상에 빛을 보게 한 공로자다.

또 친필 논쟁이 일었던 ‘안응칠역사(安應七歷史)’를 원본으로 고증해 내는 등 안 의사 전문 연구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의 소개로 상당수의 안 의사 유품이 고국으로 돌아갔다.

김 명예교수가 찾아낸 동양평화론은 필사본으로, 안 의사에 감명을 받은 일본인이 필사해 후손에 남긴 것이다. 원본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최근 도쿄의 ‘하라쇼보(原書房)’출판사는 김 명예교수의 글을 모은 ‘안중근과 조선독립운동의 원류’란 논문집을 메이지(明治) 100년사 총서 457권으로 펴냈다. 김 명예교수는 책머리에 ‘투병 중인 아내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 적고 있다.

도쿄 시내 자택에서 만난 그는 “아내가 책을 보고 반색하며 호전됐다더니 요즘 다시 안 좋아진 모양”이라며 자신보다 부인의 건강을 더 걱정했다.

외동딸 혼자 친정 부모를 뒷바라지하기도 벅차 옷가게는 문을 닫은 상태.

그는 지팡이를 짚고도 부축이 없으면 집 바로 옆 찻집까지 걷기도 힘겨워했다. 연구 활동은 중단했으나 독도 문제와 통일,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 노력에 관심을 보이는 등 학자 정신만큼은 정정했다. 그가 쓰러지면서 10회로 중단되고 만 한반도 통일 국제 심포지엄을 다시 여는 게 그의 절실한 소망이다.

혼자 거처하는 옷가게 안 작은방에 안내해 주고 나오려는데 그가 “밖에서 셔터를 꼭 닫아 달라”고 했다.

어둠에 그를 가두듯 셔터를 내리는 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도쿄=조헌주 특파원 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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