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統獨 15주년 현장을 가다]<上>옛 동독의 그림자

  • 입력 2005년 10월 3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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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0월 3일, 옛 동독 지역인 독일민주공화국(DDR)이 독일연방공화국(BRD)에 흡수 통합됨으로써 독일은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민족통일을 이룩했다. 그로부터 15년. ‘우리가 바로 민족이다’를 외치며 민족적 긍지를 통일을 향한 에너지로 승화시켰던 독일인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특히 옛 동독인들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이대론 틀렸고 변화가 필요해요. 아들은 반대했지만, 저는 좌파연합을 찍었습니다.”

2일 통독 이전 옛 동독 제3의 도시로 작센 주의 주도인 독일 드레스덴 제1선거구의 블라제비츠 투표소. 옛 공산당의 맥을 잇는 ‘좌파연합’에 투표한 유권자를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오전 8시 20분, 맨 처음 투표소 문을 열고 나타난 전직 중장비 기사 브루노 브레슬라우어(60) 씨는 “기민련이나 사민당에 희망을 걸기는 틀렸다”며 얼굴을 찡그렸다.

드레스덴 선거는 ‘9·18총선’을 앞두고 극우정당 후보가 급사하면서 연기됐던 선거. 이미 총선 결과에 따라 기민련과 사민당의 ‘대(大)연정’ 협상이 진행 중이라 좌파연합이 이날 선거의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그가 목소리를 높이자 여러 시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민당은 실업자에게 보조금을 찔끔찔끔 줍니다. 용돈 좀 벌겠다고 파트타임 일을 하면 그나마 끊겨요. 우리 같은 노인은 연금도 제대로 못 받습니다.”

다른 중년의 유권자도 “그나마 외국에 가서 투자를 유치하겠다고 뛰는 사람들은 민사당(좌파연합의 전신) 소속 시장들이더라”고 한마디 보탰다.

그레고르 기지 좌파연합 공동대표가 이번 선거전에서 “동독은 나쁜 아버지이자 좋은 어머니였는데, 사람들은 나쁜 아버지를 쫓아내면서 좋은 어머니까지 버렸다”고 한 말이 생각났다.

9·18총선에서 좌파연합 즉, 옛 공산당은 ‘의미 있는 승리’를 거두었다. 2002년 총선에서는 4% 득표에 그쳐 원내 진출 실패는 물론 당의 존립마저 위태로웠다. 그러나 드레스덴을 제외한 이번 총선에서 좌파연합은 8.7%를 얻어 녹색당을 누르고 원내 제4당이 됐다. 옛 동독 지역만 놓고 보면 25.4%를 득표해 사민당(30.5%)에 이어 제2당이다.

시내 작센 주 좌파연합 본부에서 리코 슈베르트 대변인을 만났다. 그는 “동독 소리는 꺼내지도 말라”며 손사래를 쳤다.

“시민의 기본권을 우리 당이 대변하고 있으니 지지율이 높아진 겁니다.”

그러나 동독 지역 좌파연합의 약진을 바라보는 독일인들의 시선이 마냥 곱지만은 않다. 프랑크푸르트발 드레스덴행 기내에서 만난 서독 출신 한 회사원은 “대충 일해도 먹고살 만했던 옛날로 돌아가고 싶기 때문”이라고 비꼬았다. 옛 서독 지역 비스바덴에서 발간되는 ‘비스바덴 쿠리어’ 1일자는 ‘동부인들은 조르겐킨트(Sorgen-kind·손길이 필요한 아기)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좌파연합의 약진이 옛 동독의 어려운 경제 현실 때문이라고 못 박았다. 이 신문은 서독 지역(9.6%)의 2배 가까운 살인적인 실업률(18.2%), 장벽 붕괴 후 150만 명이나 빠져나간 ‘인구 유실’ 등을 조르겐킨트의 대표적인 현실로 꼽았다.

옛 동독에 대한 향수는 ‘옛것에 대한 집착’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최근 옛 동독 지역 로스토크 시의 헤로스 슈퍼마켓에는 2000m²에 달하는 ‘옛 동독 상품 전문매장’이 들어섰다.

“동독 시절에는 우리가 하는 일이 최고라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통일 이후에는 뭘 해도 2류밖에 안 되더군요. 그래서 동독이 ‘마음 편했던 시절’로 기억되는 것 같습니다.”

작센 주 좌파연합 본부 앞 식료품점 주인의 말이 분단국가를 모국으로 둔 기자의 가슴에 진한 여운을 남겼다. ‘장벽이 무너졌다고 통일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드레스덴=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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