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원 공개거부 기자 상고기각…‘리크 게이트’ 다시 도마에

  • 입력 2005년 6월 29일 03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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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월 28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새해 국정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영국 정부는 사담 후세인이 아프리카에서 우라늄을 구매하려고 했음을 알게 됐다.” 영어 단어 16개로 된 문장이었다.

채 두 달도 지나지 않은 3월 20일 시작된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바로 이 ‘16개 단어’로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해 7월 6일. 뉴욕타임스에는 ‘나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라는 기고문이 실린다. 아프리카 니제르를 직접 답사해 이라크의 ‘우라늄 구매 시도’를 조사했던 조지프 윌슨 전 이라크 대리대사의 지상(紙上) 증언이었다. 부시 대통령이 후세인을 공격하기 위해 동원한 이른바 ‘16개 단어’는 전혀 사실무근이라는 메가톤급 폭로였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극우 보수주의 자유기고가로 유명한 로버트 노박의 ‘미션 투 니제르(니제르 임무)’라는 칼럼이 미국 언론의 지면을 장식했다. 칼럼은 윌슨 전 대리대사를 비난하면서 그의 부인 발레리 플레임 씨가 미 중앙정보국(CIA) 비밀요원이라는 사실까지 공개해버렸다. 백악관의 핵심 관리가 확인해줬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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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크게이트(Leakgate)’는 이렇게 시작됐다.

CIA 비밀요원의 신원 공개는 최고 징역 10년형에 해당하는 중죄다. 윌슨 전 대리대사는 “그런데도 백악관이 나에게 보복하기 위해 아내의 신분을 누설(leak)했다”고 주장했다. 부시 행정부의 도덕성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언론들은 나름대로의 ‘딥 스로트(익명의 제보자)’를 인용해 백악관이 신원 유출의 진원지라고 보도했다. 일파만파였다.

결국 특별검사가 임명됐다. 패트릭 피츠제럴드 특별검사는 부시 대통령을 포함한 행정부 최고위 관리들을 조사했지만 정보 누설자를 찾아내지 못하자 기자들에게 취재원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법정 공방은 ‘리크게이트’를 넘어 ‘기자의 취재원 보호’와 ‘범죄 수사’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중요하냐는 해묵은 주제로 변질돼 갔고, 재판부는 후자의 손을 들어 줬다.

2005년 6월 27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끝까지 취재원을 공개하지 않아 법정모독죄로 기소된 주디스 밀러 뉴욕타임스 기자와 매튜 쿠퍼 타임지 기자의 상고를 기각했다. 두 기자는 재심을 요청할 예정이지만 판결이 번복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두 기자가 대배심에서 끝까지 취재원 공개를 거부할 경우 대배심이 종료될 때까지 짧게는 1개월에서 길게는 18개월까지 수감될 것으로 보인다.

연방대법원은 1972년 ‘대배심에 소환된 기자들은 언론 자유를 규정한 연방 수정헌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판례를 남겨 놓았다. 이 때문에 그동안 다수의 기자가 취재원을 보호하기 위해 처벌을 감수해야 했다.

재판 과정에서 딕 체니 부통령의 비서실장인 루이스 리비 씨가 “내가 바로 문제의 취재원”이라고 고백했지만 밀러 기자와 쿠퍼 기자의 ‘취재원’이 리비 비서실장인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미 시작된 재판을 멈출 수는 없었다.

밀러 기자는 연방대법원의 상고 기각 직후 “취재원에게 비밀을 유지하겠다고 약속할 수 없다면 기자들은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증언을 하느니 차라리 감옥에 가겠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은 워터게이트 사건의 극비 제보자인 ‘딥 스로트’가 마크 펠트 전 연방수사국(FBI) 부국장이었다는 사실이 30여 년 만에 공개됨으로써 익명의 제보자 논란이 다시 거세지고 있는 시점에 터져 나와 새로운 논쟁이 불가피해 보인다.

워싱턴=권순택 특파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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