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향목 국기물결 덕에…레바논 곳곳 게양 “민족주의 회복”

  • 입력 2005년 3월 23일 17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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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한 아파트에 자리 잡은 레바논 국기 제작공장 부르지 하무드.

밸런타인데이 셔츠를 만들던 이 공장의 비좁은 방 두 칸에서 직원 7명이 쉴 틈 없이 천을 재단하고 바느질하며 레바논 국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들이 잠을 설치며 하루 22시간 작업 끝에 만들어내는 국기는 대략 5000장. 그래도 라피크 하리리 전 총리가 차량폭탄 테러로 사망한 2월 중순 이후 폭증한 수요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

그의 죽음에 시리아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확산되면서 레바논의 상징 ‘백향목’이 그려진 레바논 국기가 시리아 점령 반대와 민주화 시위의 상징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레바논은 여느 중동 국가처럼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영국과 프랑스가 ‘멋대로’ 국경선을 그어 탄생한 국가다. 인종 및 종교적 분쟁은 물론이고 1975년부터 90년까지 계속된 내전으로 국가의 정체성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최근까지도 각종 대중 집회에서는 국기 대신 기독교, 이슬람교, 또는 이슬람 시아파 내 과격 종파인 드루즈파를 상징하는 깃발이나 각 군벌 지도자의 사진이 어지럽게 나부끼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야구 모자, 비키니 수영복, 차량 안테나에도 레바논 국기가 휘날리고 있다. 어떤 집회에서는 종파나 군벌 깃발을 아예 갖고 오지 못하게 할 정도다.

판매상인 가산 하다드 씨는 국기 판매를 가장 ‘물 좋은’ 사업 중 하나로 꼽으면서 “하리리 전 총리 사망 이후 팔린 국기는 75만 장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했다. 레바논 인구는 약 400만 명.

뉴욕타임스는 이를 두고 22일 레바논의 민족주의가 꽃을 피우고 있다고 평가했다. 신문은 많은 레바논 인들은 시리아가 철군한 이후에도 이번에 조성된 민족감정이 상당히 오래 이어질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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