親시리아 내각 사퇴…레바논 ‘백향목 혁명’

  • 동아일보
  • 입력 2005년 3월 1일 18시 41분



《지난달 28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순교자 광장. 오마르 카라미 총리의 사임 발표가 알려지자 2만5000여 명의 시위대는 환호했다. 시위대는 “카라미는 무너졌다. 다음은 라후드(레바논 대통령)와 바샤르(시리아 대통령) 차례”라고 외쳤다. 미국 국무부는 이날 시위를 ‘백향목(栢香木·레바논 국기에 그려져 있는 나무) 혁명’이라고 불렀다. 지난달 14일 라피크 하리리 전 총리가 암살된 후 레바논 국민의 힘으로 시리아군 1만4000여 명의 철수 약속을 받아내고 친(親)시리아 내각의 총사퇴까지 얻어낸 것을 ‘혁명’의 수준으로 평가한 것이다.》
▽레바논의 ‘피플 파워’=카라미 총리는 지난달 28일 라피크 하리리 전 총리 암살사건과 관련한 의회 특별회의 연설에서 “정부가 국익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내각 총사퇴를 선언했다.
레바논 방송들은 친시리아계 의원이 과반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의회에서 정부 불신임안이 표결에 부쳐지더라도 통과될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카라미 총리는 국정 혼란을 막기 위해 전격적인 사퇴를 선택했다.
에밀 라후드 대통령은 카라미 총리가 제출한 사표를 수리하고 위기관리 내각을 구성했다.



▽위축되는 시리아=시리아는 1976년 이후 레바논에 군대를 주둔시키며 막후에서 레바논 정치를 조종해 왔다. 하지만 지난달 24일 시리아군 철수를 밝힌 데 이어 친시리아 내각이 총사퇴하자 레바논 내 시리아의 영향력은 급격히 줄어들게 됐다.
게다가 시리아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도 갈수록 높아지는 상황이다. 지난달 26일 텔아비브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해 4명이 숨지자 이스라엘은 시리아를 배후로 지목하고 “시리아에 대한 공격도 불사하겠다”고 경고했다.
하리리 전 총리의 암살 배후에 시리아가 있다고 알려지면서 미국과의 관계도 급속히 악화됐다. 올해 초 시리아를 ‘폭정의 거점’으로 지목했던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1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팔레스타인 개혁회의에서 시리아에 대해 “레바논에서 즉각 철군하고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실시하라”고 요구했다.
시리아 정부는 지난달 26일 외무부 성명을 내고 “시리아 내 모든 테러사무소를 폐쇄했다”며 ‘테러지원국’의 이미지를 벗으려 노력했다. 또 미국이 수배자 명단에 올린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이복동생을 이라크 정부에 넘겨 미국과의 관계회복에도 주력했다.
▽확산되는 ‘중동 민주화’=올해 들어 중동은 ‘민주화 도미노’ 현상을 보이고 있다.
1월 9일 실시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선거에 이어 1월 30일 이라크 총선도 저항세력의 위협 속에서 58%의 투표율을 보이며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24년째 장기 집권하고 있는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지시했다.
이 같은 변화는 집권 2기를 맞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중동 민주화’ 정책의 결과라고 외신들은 해석했다.
토머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듯 아랍의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최근의 레바논 사태 일지▼
△2월 14일 라피크 하리리 전 레바논 총리 피살
△18일 레바논 야당 인사, 반(反)시리아 ‘인티파다(무장봉기)’ 선언
△21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시리아군 철군 촉구
△24일 시리아 정부, 레바논에 주둔한 병력 1만4000명 철군 방침 발표
△26일 이스라엘, 텔아비브 폭탄테러 배후로 시리아 지목.
△27일 레바논 정부, 야당 시위 불허 방침 발표
△28일 레바논 시위대 6만여 명, 내각 사퇴와 시리아군 즉각 철군 시위. 오마르 카라미 레바논 총리와 내각 총사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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