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또 선거불복 회오리…야누코비치 “인정못해”

  • 입력 2004년 12월 28일 17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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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치러진 우크라이나 대통령선거에서 야당의 빅토르 유셴코 후보(50)가 승리했으나 여당 후보인 빅토르 야누코비치 총리가 개표 결과에 불복하자 유셴코 후보 지지자들이 다시 수도 키예프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이는 등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야누코비치 총리는 27일 “5000여 건의 부정 사례가 밝혀지는 등 이번 선거는 헌법과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면서 진행됐다”며 “나는 패배를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대법원에 선거무효소송을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중앙선관위는 28일경으로 예상됐던 당선자 공식 발표를 미뤘다.

그러나 야로슬라프 다비도비치 선관위원장은 “불공정한 선거였다는 여당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일축했다. 국제선거감시단도 이번 선거는 국제적 기준을 충족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야누코비치 진영의 헤오르히 키르파 교통장관이 이날 자택에서 총격으로 숨진 채 발견돼 살해 의혹이 제기됐다. 키르파 장관은 대선 당시 야누코비치 지지 유권자의 수송을 담당했다.

유셴코 후보 지지자 수만 명은 28일 새벽 키예프의 독립광장에 모여 선거결과에 승복하라고 여당 측을 압박했다. 이날 새벽에는 유셴코 후보를 상징하는 오렌지색 깃발을 단 차들이 대규모 차량시위를 벌였다. 유셴코 진영은 다음 달 2일까지 시위를 계속하기로 했다.

반면 야누코비치 총리의 지지 기반인 동부지역에서는 별다른 소요가 일어나지 않았으나 지지자들이 키예프로 몰려오려 한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세르게이 톨스토프 우크라이나 ‘정치 분석 및 국제문제연구소(IPAIS)’ 소장은 “여당과 동부지역이 이번 선거 결과에 쉽게 승복하지는 않겠지만 양측 간의 유혈충돌이 일어나거나 동부지역이 분리 독립하겠다고 나올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분석했다.

여당 측이 대법원에 제소해도 선거 결과를 다시 뒤집기는 힘들다는 것. 3개월 동안 3차례나 투표를 하면서 국민이 지쳐 있는 것도 여당에는 불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누코비치 후보가 선거 결과 불복을 선언하고 나온 것은 실망한 지지자들을 달래고 결집하려는 의도로 보인다는 것이다.

톨스토프 소장은 “대중정치인이라기보다는 행정가에 가까운 야누코비치 총리는 유셴코 후보처럼 열성 지지자들이 없어 대규모 항의시위를 이끌어내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셴코 후보가 승리한 원인으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수호자라는 이미지를 굳혔고 △연대를 통해 지지 기반을 넓힌 점을 꼽았다. 원래 유셴코 후보의 지지율은 30%를 넘지 못했다. 하지만 동부 출신이지만 현 집권세력에 대해 반감이 큰 율리야 티모셴코 전 부총리와 중도파인 알렉산드르 모로즈 사회당수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여성 정치인인 티모셴코 전 부총리는 대규모 항의 시위를 주도하는 등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시민혁명으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국민의 기대 수준이 높아진 상황에서 ‘유셴코 대통령 정부’의 앞날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는 것이 톨스토프 소장의 분석이다. 유셴코 후보가 집권한다고 해서 산적한 문제를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차기 총리를 놓고 벌써부터 유셴코 직계와 티모셴코 전 부총리, 모로즈 당수 간에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키예프=김기현 특파원 kimkihy@donga.com

▼시민혁명 주역끼리 애정과시?▼

1년 전 선거 부정에 항의하는 시민혁명을 통해 집권한 미하일 사카슈빌리 그루지야 대통령(38·사진)이 27일 외국 국가원수 중 가장 먼저 빅토르 유셴코 후보의 승리를 축하하는 축전을 보내 눈길을 끌었다.

사카슈빌리 대통령은 개표가 진행 중인 27일 오전(현지 시간) 유셴코 후보에게 “민주적으로 치러진 선거에서 우크라이나 국민이 승리했다”며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사카슈빌리 대통령에 이어 알렉산데르 크바시니에프스키 폴란드 대통령도 축전을 보내는 등 공식 선거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축전을 보내는 것은 외교적으로도 매우 드문 일이다.

사카슈빌리 대통령과 유셴코 후보는 닮은 점이 많다. 선거 부정에 항의해 시민혁명을 주도한 후 대선을 치러 승리했다. 또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서방과 가까워지려는 노선도 비슷하다. 옛 소련 지도자 스타일과는 다른 서구식 리더십도 보여 주고 있다.

사카슈빌리 대통령은 미국 변호사 출신이고 유셴코 후보도 중앙은행 총재를 지내며 서방과 접촉이 많았다.

부인이 외국계라는 것도 공통점. 사카슈빌리 대통령의 부인인 산드라 사카슈빌리 롤로프스 여사(35)는 네덜란드 출신이고 유셴코 후보의 부인 예카테리나 여사는 우크라이나 이민의 후손이지만 미국 시민이다.

키예프=김기현 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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