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러시아 테러

  • 입력 2004년 9월 6일 18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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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학교 인질 테러를 주도한 세력은 체첸반군으로 이슬람 단체가 가세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기독교 국가인 러시아와는 달리 이슬람을 믿는 체첸이 이슬람 테러단체와 종교적으로 결속한 것이다. 우리 뇌리에 이슬람 국가들은 테러 가난 혼란 등 부정적 이미지로만 각인되어 있다. 그러나 이슬람이 발현한 7세기부터 17세기까지 세계에서 가장 강성하고 부유했던 지역은 이슬람제국이었다. 그들은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교역을 장악했고 과학과 예술을 선도했다.

▷이들의 눈에 서구인은 ‘서쪽 국경 너머에 사는 미개인들’이었다. 19, 20세기 서구가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세계의 주도권을 쥔 이후 이슬람 세계는 급속한 몰락의 길을 걷는다. 200년이 넘는 오랜 침체 속에서 이슬람 내부에서도 자기성찰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슬람 지식인들은 이슬람 세계의 고질적 문제점을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는 자세’라고 분석한다. 이슬람 사회가 낙후된 원인을 자기 잘못이 아닌, 유럽의 제국주의나 미국의 패권주의 탓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물론 외부 요인이 없진 않겠지만 ‘남의 탓’은 손쉽게 책임 회피를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슬람 세력의 테러는 외부의 적을 향한 증오와 분노의 표출인 것이다. 문제는 이런 방법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체첸반군은 ‘독립’과 ‘억압으로부터의 탈피’라는 명분을 갖고 있지만 그렇더라도 테러가 이어질수록 고통받고 희생되는 측은 무고한 시민들이 될 것이다.

▷테러의 비인도성은 테러가 종료된 후에도 끝없이 피해자를 괴롭히는 점이다. 의학적으로 ‘외상(外傷) 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는 병명은 익숙한 단어가 되어 버렸다. 테러를 당한 본인이나 주변 가족이 충격으로 인해 수십년의 세월이 흘러도 악몽과 환청 같은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는 증상이다. 이번 테러에서 인질로 붙잡혔던 어린 학생들이 벌써부터 공포와 불안을 호소하는 게 상징적인 예이다. 이슬람 세력에 의해 테러 대부분이 자행되는 현실에서 테러의 근절은 이슬람 국가들의 부활 여부와 직결되어 있다. 이를 위한 세계 공동의 노력이 필수적이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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