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씨 피살]"美에 협조땐 무차별 살해" 메시지

  • 입력 2004년 6월 23일 1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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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무장단체 ‘알 타우히드 왈 지하드’가 김선일씨를 살해한 배경에는 30일로 예정된 주권이양을 앞두고 이라크 내부 혼란을 가중시켜 미국의 입지를 약화시키려는 정치적인 의도가 깊이 깔려 있다.

한편으로는 한국뿐 아니라 다른 파병국들의 심리적 위축도 노린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의도=무장단체가 김씨를 살해한 것은 무엇보다도 한국 정부에 철군과 추가파병 철회 압력을 가하기 위한 것이다. ‘이라크 혼란 확산→동맹국 철수 유도→미군의 입지 약화→미군 조기철수’의 수순을 기대한 것이다.

한국 정부가 추가파병 입장을 재확인한 직후 김씨를 살해한 것도 이 같은 정치적 의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추가파병을 완료하면 한국이 미국 영국에 이어 3번째로 많은 병력을 파견한 나라가 된다는 점도 이들이 한국인을 타깃으로 삼은 이유로 보인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김씨를 납치한 단체는 일반적인 저항세력이 아니라 전문 테러조직”이라며 “이들은 금전적인 문제보다는 정치적 목적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테러범들은 또 이라크 주둔 미군을 도와주면 참혹한 결과를 맞이할 것이라는 대내외적 경고 효과도 기대한 것이 분명하다. 김씨는 팔루자 주둔 미군부대를 상대로 납품을 해 왔다.

▽범인들의 메시지와 파장=김씨를 20여일간 붙잡았던 무장단체가 한국의 추가파병 발표(18일) 직후인 19일 살해 위협을 하고 24시간의 시한이 지나자마자 살해한 것은 한국 정부의 파병 방침을 위축시키려는 의도적인 움직임이다.

이를 위해 미국을 돕는 나라는 미국과 똑같이 취급하겠다는 메시지를 공공연히 나타냈다. 김씨를 살해하면서 “당신들의 군대는 저주받은 미국을 위해서 왔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메시지는 한국 정부가 파병 명분으로 내세운 평화와 재건이라는 인도적인 목적을 희석시켜 미국과 한국이 차이가 없음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김씨를 살해할 때 지난달 11일 이라크에서 피살된 미국인 니컬러스 버그나 12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피살된 미국인 폴 존슨이 입었던 것과 똑같은 오렌지색 옷을 입힌 것도 이런 효과를 기대한 것.

이 전략은 실제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고 있기도 하다. 스페인군이 철수한 것은 3월 스페인 열차테러 참사가 결정적이었기 때문이다. 김씨 피살의 영향으로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는 수천명이 파병군 1600여명을 철수시키라며 시위를 벌였다고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 가 23일 보도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이들의 의도가 이루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한국사회 내부의 파병 반대여론이 거세기는 하지만 김씨 살해로 상황은 변했다.

이제는 정부의 파병방침 재검토 자체가 극렬 테러단체의 위협에 무릎을 꿇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국가 위신의 문제로 직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납치단체 성명서 내용▼

“알 타우히드 왈 지하드(유일신과 성전)가 한국에 보내는 메시지다. 우리는 당신들에게 경고했지만 당신들은 (경고를) 무시했다. 거짓말은 충분하다. 이것(인질 참수)은 당신들이 자초한 것이다. 한국 군대는 이라크인을 돕기 위해 온 게 아니라 저주받은 미국의 요청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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