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감 7년8개월만에 집으로 돌아온 로버트 김 인터뷰

  • 입력 2004년 6월 2일 19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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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부터 미국 버지니아주 애시번 자택에서 가택수감 생활에 들어간 로버트 김과 부인 장명희씨. 김씨는 미국 해군정보국에서 근무하면서 기밀을 한국에 넘겨준 혐의로 9년형을 선고받고 7년여를 복역했다. 그는 다음달 27일 공식 가석방된 후 3년 동안 보호관찰 대상이 된다.-워싱턴=연합
1일부터 미국 버지니아주 애시번 자택에서 가택수감 생활에 들어간 로버트 김과 부인 장명희씨. 김씨는 미국 해군정보국에서 근무하면서 기밀을 한국에 넘겨준 혐의로 9년형을 선고받고 7년여를 복역했다. 그는 다음달 27일 공식 가석방된 후 3년 동안 보호관찰 대상이 된다.-워싱턴=연합
“그동안 도와주신 모든 한국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분들이 없었다면 지금 이렇게 나오지도 못했을 것이고 정신적 육체적 건강도 지금 같지 않았을 겁니다.”

미국 해군정보국(ONI)에서 컴퓨터 분석관으로 근무하면서 주미 한국대사관 무관에게 기밀을 넘겨준 혐의로 1996년 9월 체포된 뒤 ‘간첩음모죄’로 수감생활을 해온 로버트 김(한국명 김채곤·64)씨가 1일 미국 버지니아주 애시번 집으로 돌아왔다.

김씨는 97년 7월 연방법원에서 징역 9년에 보호관찰 3년을 선고받았지만 모범수로 인정돼 7년8개월 만인 이날부터 가택수감(home confinement) 생활에 들어갔다.

“너무 오랜만에 나오니 해방된 기분이지만 완전히 나온 것은 아니어서 심적인 압박감은 아직 있어요. 한국 국민이 물심양면으로 격려하고 도와줘 고통스러운 수감생활 동안 정말 힘이 됐습니다. 한국인임을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됐죠. 앞으로 그 사랑에 보답하려 합니다.”

김씨는 약 2개월 뒤인 7월 27일 공식 가석방되지만 3년 동안 보호관찰을 받기 때문에 위치 추적이 가능한 전자장치를 발목에 차고 지내야 하며 미 정부의 허가 없이는 버지니아주를 벗어날 수 없는 처지다. ‘전자발찌’ 값 104달러는 김씨가 부담한다.

이 때문에 그는 “수감생활 때문에 올해 2월 돌아가신 아버지의 임종도 지켜보지 못해 당장이라도 묘소에 달려가고 싶지만 당분간은 어려울 것 같다”면서 안타까워했다.

미국 시민권자이면서도 조국인 한국을 돕기 위해 한 일 때문에 처벌을 받았는데 한국 정부에 섭섭한 것은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한국 정부가 그동안 어떻게 했는지 정확하게 몰라서 할 말이 없다”고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나도 정부에서 일해 봤지만 어느 정부나 공식적으로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이 있다”면서 “한국 정부가 노력한 것으로 알지만 결과가 반드시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자신이 받은 혐의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그였지만 “법률적으로 혐의를 인정하지 못해 항소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니 억울하지만 더 이상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한미관계의 이상기류와 관련해서는 “한미관계에서 변화는 당연하고 한국도 주권국가로서 할 말은 해야 할 부분이 있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반미는 안 되며 서로 잘 지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로버트 김 후원회’를 이끌고 있는 국내 이웅진 후원회장과 30여분간 전화통화를 했다. 그는 이 회장이 “가택수감이 끝난 직후인 8월쯤 한국을 찾을 수 있도록 준비 중”이라고 말하자 “미국 의사들은 마음을 잘 몰라주기 때문에 한국에 가면 세세한 부분까지 건강진단을 받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통화가 끝난 뒤 “6월 한달 동안 김씨의 생계 대책 마련을 위한 가두모금을 벌일 계획”이라며 “그의 회고록을 발간하기 위해 접촉 중”이라고 밝혔다.

워싱턴=권순택특파원 maypole@donga.com

정원수기자 needjung@donga.com

▼로버트 김 사건이란▼

미국 해군정보국(ONI)에서 근무하던 한국계 미국인인 로버트 김씨가 미국의 국가 기밀을 빼내 워싱턴 주재 한국대사관 무관 백모 대령에게 넘겨줬다는 혐의로 1996년 기소된 사건.

당시 ONI에서 문관으로 일하던 김씨는 1995년 11월 만난 백 대령으로부터 한국의 대북 첩보 활동에 대한 협조 요청을 받고 이듬해 9월 강릉 잠수함 침투 사건이 일어나자 이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됐다. 한국 정부는 백 대령을 소환한 뒤 전역시키고 이 사건을 김씨와 백 대령간의 개인 차원의 문제로 규정한 뒤 사건을 마무리했다.

한국 정부가 이후에도 김씨 석방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거나 가족의 생계를 배려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자 정부에 대한 비난이 일기도 했다. 미국 시민권자지만 한국 정부가 조국을 위해 희생을 감수한 로버트 김을 구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가 아니냐는 것이다.

또한 김씨를 미국의 국가 이익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거나 해치지 않았는데 간첩죄로 징역 9년형을 받은 것은 과중한 형량이며 ‘인권침해’라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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