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철칼럼]‘상생정치’ 하겠다면

  • 입력 2004년 4월 28일 19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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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12월 마오쩌둥(毛澤東)과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1년 전의 대장정으로 기진맥진한 끝에 산시(陝西)성 옌안(延安)에 갇혀 있다시피 했다. 12일 새벽 이들에 대한 토벌을 독려하기 위해 인근 시안(西安)에 머물던 국민당 장제스(蔣介石)가 체포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휘하 동북군사령관 장쉐량(張學良)의 모반이었다. 중국을 대표하던 장제스다. 당시 중국은 일본군이 침략 중임에도 항일전보다는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이 치열했다. 공산당을 대표해 저우언라이(周恩來)가 장제스와 마주 앉았다. 공산당 손에 장제스가 처형될 것이란 소문이 돌았다. 2주간의 협상 끝에 예상을 뒤엎고 장제스는 풀려났다. 국민당은 공산당 토벌을 중지하고 항일공동전선에 나선다는 것이 핵심 조건이었다.

▼‘西安사건’의 메시지▼

중국 현대사의 큰 줄기를 바꾼 ‘시안사건’이다. 세상이 뒤집어지는 순간이었음에도 합의문은 없었다. 장제스는 구두약속을 주장했고 저우언라이도 서명을 강요하지 않았다. 장제스가 떠난 후 마오쩌둥이 성명을 냈다. “장제스씨의 말에 찬양할 만한 구절이 있으니, ‘말에는 반드시 신용이 있고 행동에는 반드시 결과가 있다’는 구절이다. 서명하지 않았다고 하여 신용을 지키지 않을 리 없다는 것이다.”(이중 기행평전 ‘모택동과 중국을 이야기하다’, 김영사). 장제스는 약속을 지켰다.

역사 풍토 성정이 다른, 외국 이야기 하기가 썩 내키는 것은 아니지만, 17대 총선 후 최대화두인 상생정치에 시안사건이 시사하는 바가 많다는 생각에서다.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 칩거 중 띄운 말이 상생과 통합의 정치였고,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도 그 뜻을 열심히 전파하고 있다. 당연한 말이 새삼스레 강조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상생과 통합의 정치를 수없이 외쳐댔지만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뜻 아닌가.

상생정치가 어렵다니 무슨 까닭인가. 주된 이유는 말로만 상생정치를 했지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상생 환경을 만들어 낼 능력도 없었고, 상생의 룰을 지킬 의사도 없지 않았는가. 그래서 이제 집권세력에 진지한 마음을 주문하고 싶다. 지금까지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세력이 보여 준 정치행태의 문제점이 경박함 아닌가. 구호만 외치고, 깃발만 흔들어서는 상생정치의 실현이 어렵다는 사실을 절감하기 바란다.

상생이란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사이좋을 때가 아니다. 사이가 나쁘고, 긴장관계일 때 상생의 필요성을 공감하는 법이다. 문제는 서로 다름을 강조한 나머지 상대를 타도해야 할 적으로 몰아붙이는 데 있다. 이제 다시 상대방을 반의회 세력으로, 의회 쿠데타 세력으로 몰아버리면 상생정치는 발을 붙일 수 없다. ‘시민혁명’이란 것이 상생과 통합의 정치를 무너뜨리는 데 큰 몫을 했던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상대로 하여금 위기감을 갖게 해서는 상생의 공감이 일어날 수 없다. 결국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믿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상생의 기본조건이다. 믿음을 바탕으로 한 포용력에서 남이 넘볼 수 없는 강한 자신감도 쌓인다. 시안사건은 중국인의 ‘전략적 사고’ 능력을 세계에 각인시켰다.

▼독점이 아니라 공유▼

국가적 명제를 독점할 때도 상생정치는 살아남을 수 없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가 철권을 휘두를 때 내세운 것이 애국심이다. 애국심의 독점으로 모든 불법을 덮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개혁, 민족, 민주를 독점한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대중선동정치도 이런 독점욕에서 비롯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상대방은 반개혁, 반민족, 반민주세력이란 말인가. 자기만이 옳다는 우월감은 상생을 죽인다. 열린우리당이 원내 과반수를 확보한 제1당이라고는 하지만 여야로 구별하면 152 대 147로 불과 5석 차이고, 정당득표율에서는 우리당 38.3%, 한나라당 35.8%였다. 우월감이 아니라 겸손함을 일깨우고, 독점이 아니라 공유를 강조하는 민의 아닌가. 이것이 상생정치의 룰이다. 열린우리당 정 의장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회담에서도 ‘상생 공감’이 선행돼야 한다. 그리고 왜 상생정치를 해야 하는지를 항상 자문해 보라. 이번엔 말로 끝나서는 안 될 이유를 집권세력이 더 잘 알 것이다.

최규철 논설주간 ki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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