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공직사회 감원태풍…차관급 193명-14개부처 폐지

  • 입력 2004년 3월 31일 18시 01분


코멘트
최근 크렘린은 2000여명의 전 직원에게 대규모 인력 감축과 조직개편을 예고하는 서한을 보냈다. 내용은 “떠나는 날까지 맡은 업무를 성실히 수행해 주길 바란다”는 것.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직접 주도하는 혁명적인 행정개혁의 폭풍이 크렘린에서부터 불기 시작한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8명의 대통령행정실(비서실) 차장을 2명으로 줄이는 것으로 크렘린 개편의 서막을 열었다. 대통령고문을 맡고 있던 60대의 전직 국방장관 2명도 해임했다.

러시아 일간 이즈베스티야는 사상 초유의 조직 축소를 앞둔 크렘린이 초긴장 상태라고 전했다. 크렘린뿐 아니라 ‘철밥통’으로 유명하던 러시아 관료 사회도 전전긍긍하고 있다. 지난달 9일 14개 부처를 폐지하고 30개의 장관급 자리를 17개로 줄인 데 이어 부처별로 조직개편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총리실은 1100여명의 직원을 600∼700명 선으로 줄일 예정. 부처별로 10여명이 넘는 차관도 2, 3명으로 줄인다. 이즈베스티야는 현재 모두 221개인 차관급 자리 중 193개가 없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1917년 볼셰비키혁명과 1991년 소련붕괴 때도 ‘꼬리만 자른 채’ 살아남았던 방대한 관료조직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자리를 지키기 위한 고위관리들의 몸부림도 필사적이다. 특히 조직이 커 행정개혁의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예상되는 외무부 국방부 내무부 등은 “무분별한 조직 축소가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는 논리까지 내세우며 직접 푸틴 대통령에게 읍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위관리들이 저마다 살아남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바람에 행정과 대외교섭이 사실상 마비됐다는 민원도 쏟아지고 있다.

보다 못한 푸틴 대통령이 “나는 혁명이 아니라 효율적인 행정 조직을 원하는 것”이라며 관료사회를 진정시키기 위해 나섰지만 동요는 멈추지 않고 있다.

평생을 특권과 권위에 안주하던 관료들은 옷을 벗으면 갈 곳이 없다. 부총리와 장관이 차관으로, 차관이 국장으로 직급을 낮춰서라도 공직에 남으려는 사례까지 이어지고 있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