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범은 스위스製 휴대폰칩 쓴다”

  • 입력 2004년 3월 5일 18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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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4월. 독일에서 파키스탄으로 의문의 휴대전화 통화가 이뤄졌다. 1분 남짓 말소리가 전혀 없는 ‘침묵의 통화’였다.

독일 정보기관은 이를 테러 행동개시 신호로 파악하고 미국과 유럽 정보기관과 공조 수사에 착수했다. 침묵의 통화가 있은 뒤에는 공교롭게도 세계 도처에서 테러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 침묵의 통화는 전 세계 어디서나 전화통화가 가능한 스위스제 칩을 끼운 휴대전화끼리 이뤄졌다. 서방 정보기관은 손톱보다 작은 이 칩의 사용자를 집중 추적해 3개 대륙에 걸쳐 테러조직 알카에다와 관련된 조직원 10여명을 체포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인도네시아에서는 3건의 테러공격을 사전에 막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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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명 ‘몽블랑’=2002년 초 알카에다와 관련된 테러범 아부 무사위 알 자카위가 독일 유대인을 표적으로 공격지시를 내렸다. 이를 감청하는 과정에서 서방 정보기관은 알카에다 조직원들이 특정 브랜드(스위스콤)의 휴대전화 칩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신분증 없이 선불로 구입할 수 있어 신분을 감출 수 있을 뿐 아니라 전 세계 어디나 통화가 가능해 테러리스트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것.

2002년 4월 독일-파키스탄간 침묵의 통화 이후 서방 정보기관은 이 칩 사용자를 집중 추적했다. 그 결과 9·11테러 주모자로 전세계 1급 수배자 중 한 명인 할리드 샤이흐 모하메드를 파키스탄에서 체포했다. 또 인도네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스위스 등지에서 암약하던 알카에다 조직원들을 대거 검거하는 개가를 올렸다.

이 공조 수사는 9·11테러 이후 각국 정보기관간에 이뤄진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독일, 영국, 이탈리아 등 10여개 국가가 여기에 참여했다.

유럽의 한 고위 정보담당 관리는 “테러조직은 국제전화 선불 칩이 자신들의 익명성을 보호해 줄 것으로 생각했겠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였다”고 말했다. 모든 전화를 감시할 필요 없이 선불 칩을 사용하는 소수의 사람만 집중 감시할 수 있어 더 효율적이었다는 것.

▽또 다른 전쟁=하지만 알카에다도 서방 정보기관이 휴대전화 칩을 추적해 자신들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이에 따라 몽블랑 작전은 종료됐다.

위치 추적이 쉬운 휴대전화의 취약성을 알아챈 테러조직원들은 이제 휴대전화 대신 e메일과 인터넷 전화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그렇다면 이제 테러리스트들은 이 칩을 이용한 전화를 하지 않을까.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는 게 정보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아직도 휴대전화를 이용한 테러 지령이 효과적이기 때문에 몽블랑 작전은 종료됐지만 감시는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정보담당 관리는 “그들은 전화기를 바꿨지만 여전히 스위스콤에 ‘충성’을 하고 있다”며 “항상 똑같은 카드를 사용하는 아둔함이 우리에게는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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