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무대 연쇄 방화

  • 입력 2003년 11월 19일 19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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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 지오그래픽의 프리랜서로 평생 외톨이였던 중년의 사진작가 킨케이드, 아이오와주 농부와 결혼했지만 가슴속 깊은 곳엔 아직도 ‘시심(詩心)’을 묻고 살아가는 프란체스카. 미국 작가 로버트 제임스 왈러가 92년 펴내 세계에서 1200만권이 팔려나간 소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나오는 커플이다.

“누가 이들이 나눈 쓸쓸한 사랑의 흔적을 불태우는가.”

미국민들은 최근 이 소설의 흔적이 배인 곳에서 연쇄 방화사건이 일어나자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매디슨 카운티의 보안관 폴 웰치는 “22년 보안관 인생의 명예를 걸고 방화범을 잡겠다”고 선언했고, 작가 왈러는 “결정적인 제보자에게 1만달러를 주겠다”고 발표했다. 현재까지 현상금은 3만6000달러.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들을 분노케 한 첫 방화는 지난해 9월 3일 세다 다리에서 일어났다. 정확히 1년 뒤인 올 9월 3일에는 인근 키오쿠크 카운티의 다리가, 다시 사흘 후 매디슨 카운티의 호그백 다리가, 이어 10월 6일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세트가 된 ‘프란체스카의 집’이 불탔다.

100년 이상 된 이들 다리는 대부분 국가 사적으로 등록돼 있다. 다리 덕분에 주민이 1만4000명에 불과한 매디슨 카운티에는 한해 5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몰렸다.

이러니 주민들의 분노도 크다. 소설의 중요한 무대인 로즈먼 다리에는 현재 주민들이 야경을 서고 있으며 500와트짜리 조명등도 설치됐다.

웰치 보안관은 83년 ‘맥브라이드 다리’ 방화사건을 참조하고 있다. 이 다리에 사랑의 언약을 새겨넣었던 한 청년이 사랑이 깨진 뒤 절망감 속에 방화한 사건이다. 웰치 보안관은 “불이 난 다리에서 약혼, 결혼식을 올렸다가 이혼한 커플들을 모조리 점검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18일 전했다.

그러나 시대 상황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두 사람이 4일 동안 ‘운명적 사랑’을 나눴지만 그건 불륜이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집권 이후 미국에서 확산되고 있는 기독교적 도덕주의가 방화의 배경이 됐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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