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선 교수 "국제정치에 자주란 없다"

  • 입력 2003년 11월 19일 16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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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정치에서 자주(自主)는 없습니다. 이제 자주냐 동맹이냐의 이분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자주라는 개념 자체가 기존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신(新)자주' 혹은 '공주(共主)' 같은 것으로 대체돼야 합니다."

하영선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56)는 이라크 파병 논의를 지켜보면서 "19세기 개항기 개화파와 수구파 사이의 싸움을 보는 듯한 구태의연함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개화파가 중국과의 관계에서 자주를 이야기하고 수구파가 사대적 동맹관계를 주장했지만 어느 쪽도 조선의 운명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

하 교수가 19세기 조선의 외교전략을 둘러싸고 나온 '위정척사(衛正斥邪)론' '동도서기(東道西器)론' '개화(開化)론' 등에 주목하는 이유는 '친(親)외세 종속'과 '반(反)외세 자주'라는 이분법을 넘어서는 21세기 국제정치 담론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다. 하 교수는 최근 자신이 주도하고 있는 국제관계연구회가 펴낸 총서 '국제정치와 한국'(전 4권·을유문화사) 중 '문명의 국제정치학' 편에서 개항기의 외교관계 담론들을 정리했다. 국제관계연구회는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국내외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자들의 모임.

하 교수는 이라크 파병에서의 '자주' 주장은 1980년대 대학가에서 논의됐던 반(反)외세 반미(反美) 주장에 맥이 닿아있다고 본다. 당시 반외세를 외치던 386 세대가 사회의 중심에 서면서 캠퍼스의 반미 논쟁이 사회적으로 확산된 것이라는 해석이다.

하 교수는 "386 세대들의 닫힌 민족주의로는 21세기의 복합적 공간에서 살아갈 방도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 교수가 말하는 21세기 공간은 '국가'를 중심으로 한 근대적 공간과 다르다. 즉, 시민단체, 지방, 사이버스페이스 외에도 유럽연합(EU) 세계무역기구(WTO) 등 여러 층위의 공간들이 공존하는 개념이다.

하 교수가 국제관계연구회에서 연구하는 주제도 복합적 공간 개념에 맞는 '한국적 국제정치학'을 모색하는 일이다. 총서 '국제정치와 한국'은 이를 위한 기초작업으로 한국 국제정치학의 주요 과제와 쟁점에 대한 그간의 연구 성과를 정리하고 있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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