럼즈펠드의 어제와 오늘…닉슨 보좌관땐 反戰여론 주도

  • 입력 2003년 11월 18일 18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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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닉슨 대통령(왼쪽)의 보좌관으로 활동하던 30년 전 도널드 럼즈펠드 현 미 국방장관의 모습. 그는 당시 닉슨 행정부에서 ‘정치적 야심에 가득찬 결단력 있는 인물’이라는 평을 얻었다. -애틀랜틱 먼슬리
리처드 닉슨 대통령(왼쪽)의 보좌관으로 활동하던 30년 전 도널드 럼즈펠드 현 미 국방장관의 모습. 그는 당시 닉슨 행정부에서 ‘정치적 야심에 가득찬 결단력 있는 인물’이라는 평을 얻었다. -애틀랜틱 먼슬리
“중동은 위험이 클 뿐더러 자네가 할 수 있는 일도 없으니 피하도록 하게.”

30년 전 당시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젊은 보좌관 도널드 럼즈펠드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국방장관으로서 이라크전쟁을 지휘하는 럼즈펠드 장관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얼굴 없는’ 이라크 내 게릴라의 끈질긴 저항은 그와 미국을 수렁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레슬링 선수 출신 해군장교=1932년 시카고에서 태어난 럼즈펠드 장관은 고교 레슬링 선수로 이름을 날렸으며 프린스턴대에서도 레슬링팀 주장을 맡았다. 한때 1956년 올림픽 출전도 꿈꿨다.

학군장교로 복무를 마친 럼즈펠드 장관은 1957년 보좌관으로 워싱턴 정가에 입문한 뒤 1962년 일리노이주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그는 조지타운대 전략연구센터 창설에 참여하는 등 일찍부터 대외정책에 관심이 많았다.

▽비둘기파에서 매파로=1969년 닉슨 행정부의 보좌관 시절 럼즈펠드 장관은 대외정책에 본격 관여하기 시작했다. 당시 그는 현재의 극보수 성향과 달리 행정부 내 대표적 ‘비둘기파’로 불렸다.

그는 당시 “미국은 베트남전에서 발을 빼야 한다”며 반전 여론을 주도했다. 당시 닉슨 대통령은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에게 “그들(럼즈펠드 등)은 평화만 부르짖을 뿐이니 몰아냅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경제 분야 일을 하던 시절에도 사회적 약자를 위한 예산 증액에 적극 나서 닉슨 대통령과 자주 충돌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전략적 선택’이라고 본다. 제임스 만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 연구원에 따르면 “럼즈펠드가 비둘기파를 자처한 것이나 진보적 정책을 편 것은 “백악관 주류 여론에 반대해 의제를 선점함으로써 몸값을 높이려는 의도”였다는 것.

럼즈펠드 장관은 이후 “베트남전 때문에 소련과의 전쟁에 집중할 수 없다”는 일부 반전 매파들과 맥이 닿았고, 이후 강경노선으로 선회했다.

▽럼즈펠드 독트린 본격화=그는 제럴드 포드 행정부에서 사상 최연소 국방장관을 지낸 뒤 주로 민간기업에서 일했다. 그러다가 2001년 1월 ‘코드가 맞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국방장관에 발탁되자 자신의 군사전략 구상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는 2001년 자신의 수십년 지기인 국방전문가 앤드루 마셜(81)을 영입, ‘전략적 유연성’을 핵심으로 하는 ‘럼즈펠드 독트린’을 완성했다.

이 독트린의 핵심은 해외 주둔미군의 숫자를 줄이는 대신 첨단무기로 전투력을 강화하고, 한 지역에 주둔시키기보다는 신속하고 유연하게 군을 여러 작전지역에 투입한다는 것. 주한 미군 재배치도 이 구상의 일환이다.

그의 독트린이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의 구상대로 진행된 이라크전쟁은 점점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기 때문이다.

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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