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고이즈미 “2005년까지 개헌”]'재무장' 기정사실화

  • 입력 2003년 8월 26일 18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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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집권 자민당 창당 50주년인 2005년 11월까지 헌법개정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혀 일본 재무장화를 골자로 하는 개헌을 기정사실화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25일 야마사키 다쿠(山崎拓) 자민당 간사장과 만나 “자민당이 헌법개정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밝혀 국민적 관심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며 자민당의 준비를 주문했다고 일본 언론들이 26일 보도했다.

일본 총리가 개헌 필요성을 우회적으로 언급한 적은 있지만 시기까지 못 박아 개헌 추진 방침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의 헌법 개정은 자위대 군비증강 및 해외파견, 유사법제 통과에 이은 일본 재무장화의 결정판이라는 점에서 한국 중국 등 주변국과의 외교적 마찰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급물살 타는 일본의 재무장화=고이즈미 총리는 26일 파문이 커지자 “현 내각은 지금까지의 과제만으로도 벅차며 새 정치과제에 매달릴 여유가 없다”며 총재 선거에서 재선되더라도 임기 중에는 헌법개정을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미묘한 사안에 대한 속내를 흘렸다가 파문이 커지면 슬그머니 발을 빼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발언 내용을 사실로 굳혀나가는 전형적인 ‘고이즈미식 어법’이라는 게 중론.

자민당 내에서는 헌법개정안에 △집단적 자위권 인정 △천황의 국가원수화 △‘히노마루’를 국기, ‘기미가요’를 국가로 규정 △육해공 3군과 기타전력 보유 등의 조항이 담길 것으로 보고 있다. 자민당 내 헌법조사회가 이미 5월에 이 같은 내용의 초안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고이즈미 총리도 “자위대는 실질적으로 군대”라며 집단적 자위권 행사 금지와 전수(專守·수비에 전념한다는 개념)방위 원칙도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이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후인 1947년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공포한 현행 평화헌법의 골격을 흔드는 것. 일본 내 양심세력과 일부 야당은 “자민당의 개헌초안은 군국주의 색채가 짙다”며 반발하고 있지만 대세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우경화로 헌법개정 가능할까=일본의 헌법개정은 전후 반세기 이상 우익세력의 숙원이었다. 일본 정계는 우익의 개헌 요구가 계속되자 2000년 1월 중의원과 참의원에 헌법조사회를 설치해 2004년까지 개헌 방향을 논의하기로 했다.

이후 진척이 없던 개헌 논의는 9·11테러, 이라크전쟁, 북한의 핵개발 및 일본인 납치사건 등을 계기로 우익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갑자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외국으로부터 무력공격을 받을 경우를 상정한 유사법제가 의회에서 압도적 다수로 통과된 것도 개헌론자들을 고무시켰다.

일본에서 헌법을 개정하려면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각각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고 국민투표에서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현재의 의석분포로는 야당의 동의가 없는 한 국회통과는 어렵다. 하지만 최근의 일본 정치권 분위기로는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개헌에 반대하는 좌익계열의 사민당과 공산당이 지리멸렬한 상태인 데다 개헌에 소극적이던 제1야당 민주당도 “시대가 바뀐 만큼 어떤 식으로든 헌법개정은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일본 언론은 11월 이후로 예정된 총선거에서 개헌이 쟁점으로 떠오를 경우 최근의 우경화 흐름과 맞물려 개헌론자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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